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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역사 여행

선사 시대

▶ 고인돌군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강화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구석기 시대인 약 2만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쌍날찍개(하점면 장정리) 및 뗀석기(내가면 오상리, 양사면 교산리 등)가 출토되었고, 신석기 시대의 돌도끼와 돌화살촉(화도면 사기리, 하점면 부근리, 초지진 등), 빗살무늬 토기(화도면 동막리)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화도면 동막리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인 민무늬 토기가 발견됨에 따라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 시대의 강화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최종 수정일 2018.07.11 수정요청

고조선

기원전 2333년경 건국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한반도 남쪽에서 유일하게 전해오는 단군 유적지가 강화에 위치해 있다. 고조선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어 명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지만, 출토된 유물(청동기 시대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북방식 고인돌의 분포)을 바탕으로 강화가 어느 한 시기에 고조선의 영토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마니산 참성단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 마니산 정상에 위치해 있으며, 고려사에 따르면 ‘산 정상에 참성단이 있는데 단군의 제천단이라 전해온다’라고 기록돼 있다. 고려 시대에는 나라의 번영을 위해 마니산에 궁궐을 지었고, 조선 시대에는 전국 제일의 산신(山神)으로 인정받았다. 지금도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불리며 매년 전국체전 성화 채화와 개천절 행사가 치러진다.



▶ 정족산의 삼랑성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 돌로 쌓은 석측 성벽으로, 정족산에 있어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린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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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삼국 시대에 강화는 한반도 중앙에 자리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중국과의 교류에 필요한 거점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때로는 동맹을 맺으며, 때로는 전쟁을 통해 경쟁하며 발전을 이룩해 나갔다. 강화는 한강 유역에 위치해 백제, 고구려, 신라 등 차례로 주인이 바꼈던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에 하나였다. 또한 삼국 시대에는 중국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이며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다.


▶ 전등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에 창건되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이 372년으로, 전등사는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 적석사


고구려 장수왕 때인 416년 천축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고려산 서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본래 이름은 적련사였으나 후에 적석사로 바꼈다. 낙조봉이 있어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 보문사


신라 선덕여왕 4년인 635년에 창건된 천 년 고찰로 석모도에 위치해 있다.
산 중턱의 눈썹 바위 아래 성스러운 마애석불좌상이 자리해 있다. 우리나라 3대 해수 관음 성지로 유명하다.



▶ 정수사


마니산에 위치한 사찰로 639년(신라 선덕여왕 8) 회정대사가 창건하였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아미타불을 비롯한 불상 4위와 현왕탱(現王幀), 탱화 7점 등이 남아 있다.
최종 수정일 2018.07.11 수정요청

고려 시대

고려 시대에 나라의 임시 수도 역할을 했던 강화. 당시 세계를 호령했던 몽골군에 대항해 고려 정부는 강화로 천도를 단행하였고, 1232년부터 1270년까지 39년간 고려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고려 정부는 새 수도인 강화를 지키기 위해 궁궐을 새로 짓고, 내성과 외성, 중성을 쌓아 방비를 철저히 하였다. 또한 주, 군에 향교를 설치하여 유학 교육을 장려하였다. 더불어 고려 시대에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문화재 많이 제작되었는데, 팔만대장경과 고려청자, 금속활자가 발명되었다.


▶ 교동향교


공자상을 모신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 1127년(고려 인종 5) 화개산 북쪽에 세워졌다.
공자의 신주와 우리나라 18현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 강화향교


고려 시대에 지방의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육 기관으로, 고려 시대에 건축되어 조선 영조(1731년) 때에 이르러 지금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봄가을에 석전(夕奠) 봉행(奉行) 및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한다.



▶ 고려궁지


고려가 강화로 천도를 단행한 이래 1232년(고종 19)부터 1270년(현종 11)까지 사용된 궁궐터.
1270년 몽골에 항복하고 개경으로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모두 허물어졌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그 터에 지방 행정 관서와 궁궐 건물이 세워졌으나 병자호란,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지금의 고려궁지는 1970년대 이후에 복원된 것들이다.



▶ 강화산성


고려가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로 천도하면서 도성과 함께 쌓은 성벽이다. 개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내성, 중성, 외성 3중으로 성벽을 쌓았다. 그중 고려 왕실과 궁궐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내성이 바로 강화산성이다. 현재는 산성을 따라 나들길이 조성되어 있어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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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삼국 시대부터 요새로서 기능을 다했던 강화. 조선 시대에도 전쟁과 같은 변란이 있을 때 피난을 가던 곳이 바로 강화였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진(鎭), 보(堡), 돈대(墩臺)를 설치하며 나라의 방어 기지로써 더욱 굳건한 역할을 하였다.


▶ 교동읍성


1629년(인조 7)에 세워진 돌로 쌓은 읍성이다. 외침을 막고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둘레 430m, 높이 6m에 세 개의 문과 문루가 있었으나 현재는 반원 형태의 홍예문과 새로 지은 문루만 남아 있다.



▶ 진, 보, 돈대


진, 보, 돈대는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 수비 대책의 일환으로 설치되었다. 강화 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 역할을 하였으며, 그중 광성보가 가장 먼저 설치되었다. 숙종 때는 해안을 따라 많은 돈대를 설치하였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5진, 7보, 53돈대가 운영되었다. 그중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은 신미양요(1871년) 당시 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 용흥궁


조선의 25대 왕인 철종이 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잠저(潛邸). 당쟁에 휘말릴 수 있어 글자를 배우지 못했던 철종은 가난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19세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철종은 조선의 왕 중에 유일하게 도성 밖에서 왕이 된 인물이다. 용흥궁은 철종이 왕이 되고 4년 후에 새롭게 지어졌으며, 왕(龍)이 일어난 곳이라 하여 ‘용흥궁’으로 이름 붙여졌다.



▶ 철종외가


철종 4년에 지어진 가옥으로 철종의 외숙 염보길(廉輔吉)이 살았다. 당시 경기 지역의 사대부 가옥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화려하지 않게 지어졌다. 본래는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에 둔 H자형 가옥이었으나 행랑채 일부가 헐려 현재는 ㄷ자 모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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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근대에 이르러 강화는 한강 어귀에 위치한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요호 사건(1875) 등 잦은 외침을 겪는다.
그러던 1876년 2월,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선은 일본에 개항을 하게 된다.


▶ 연무당 옛터


연무당은 본래 1870년(고종 7) 강화유수부의 군사 훈련을 위해 세워진 조련장으로, 1876년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강화도조약에 따라 우리나라는 부산, 인천, 원산을 일본에게 개항하였다. 연무당 옛터는 강화산성 서문 근처에 위치해 있다.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국내 최초의 한옥 성당으로 1900년에 건축되었다.
한국 전통 양식의 외관과 서양 바실리카 양식의 실내가 독특하다. 다른 성당과 달리 동서양의 미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 소창체험관


화려했던 강화 직물 산업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소창체험관.
우리나라 최초의 방직 회사인 조양방직 사진과 1800년대의 재봉틀, 베틀 등 다양한 방직 산업의 모습을 전시해 놓았다.
관람뿐만 아니라 소창 손수건 만들기 등의 체험도 무료로 할 수 있다.



▶ 심도직물터


강화는 섬이지만 옛날부터 방직 공장이 많았던 곳.
1933년 처음으로 조양방직이 들어서면서부터 1970년대에는 60여 개의 크고 작은 공장들이 모여 방직 산업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용흥궁공원 맞은편의 심도직물공장이 있던 자리에 공장 굴뚝의 일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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