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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축 여행

서울 건축 여행

벽돌과 콘크리트만 쌓는다고 다 건축이 아니다.
이방인처럼 조금은 낯설게, 서울의 오랜 역사 위를 걷는 시간.

상당수의 서울 사람들이 ‘서울의 건축’에 대해 부정적이다. 여행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해외의 고풍스런 옛 건물,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거리 풍경을 추억하며, 달라도 어쩜 이렇게 다르냐고 불평한다. 일상이기에 더 무감하고 평범해 보이는 면이 있긴 하지만, 서울이 다른 역사적 도시 들에 비해 건물을 너무 쉽게 허물거나 지을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도시 전체의 조화를 고려하거나 공통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노력도 찾아 보기 힘들다. 보통 오래된 도시가 품고 있는 하나의 느낌이란 게, 서울에는 없다. 그렇기에 서울의 건축은 더 흥미롭다. 거리 하나를 마주 보고도 오래된 가치와 현대적 사유가 공존하는 도시. 사람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보 이지 않는 장벽을 치고, 저마다의 욕망을 층층이 쌓아 올린다. 좁은 골목에서 더 거세지는 바람처럼, 각기 다른 시공간을 품은 채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축물들이 기묘할 정도로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서울의 근현대 건축물들을 밀도 높게 바라보려면 우선 정치적, 사회적 요인을 기 준으로 건축이 지어진 시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일상과 맞닿은 건축의 특성상, 각 시대의 보편적인 정신과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 기 때문이다. 오랜 일제 강점기와 고도 성장기, 민주화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건축은 매번 ‘지금 서울’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왔다. 건축사사무소 나우의 최준석 소장이 추천해준 리스트를 들고 서울의 시대별 건축물들 사이를 걸었다. 시대와 사람, 풍경이 전하는 이야기들이 저마다 나지막한 목소리를 냈다. 걷고 또 걷는 그 순간에도,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계속 달라지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19세기 말~1945년)

명동성당

오래된 성당이나 교회가 의미 있는 건 시선을 압도하는 웅장함이나 아름다운 건축 양식만이 아닐 거다. 급변하는 시대를 함께하며 고단한 이들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역할은 다른 건축물에서는 불가능한 영역일 테니 말이다. 명동역과 을지로입구역 사이 언덕배기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높은 건물. 흔히 명동성당이라 부르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다. 1883년 조선교구가 침계 윤정현의 저택과 부지를 매입했는데, 처음엔 한옥을 그대로 이용하다가 4년 뒤 저택을 허물고 본격적인 성당 건축을 시작했다. 공사가 끝난 것은 1898년 5월. 이후 역사의 매 순간마다 약하고 핍박받는 이들의 안식처가 되어줬으며, 1980년대 민주화의 성지로 활약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을 관통하며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한 장 소.” -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정독도서관

북촌 감고당길 언덕에 위치한 정독도서관은 국내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 있던 건물이다. 1900년 개교 이래 70여 년간 이곳을 지켜온 경기고등학교 말이다. 과거 김옥균과 서재필의 집터를 합친 공간으로 단정한 흰색 건물이 근대 건축의 표준 양식을 보여준다. 1970년대 중반 강남 개발의 일환으로 학교는 삼성동에 이전했지만, 옛 교사를 그대로 보전해 서울 시민들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현재 정독도서관은 53만여 권의 장서와 2만 3000여 점의 비도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호젓하게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숨은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고등교육기관 경기고등학교의 옛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5길 48



문화역서울 284

적어도 서울에 거주한다면 결코 모를 리 없는 건물이 하나 있다. 지하철 노선도의 중심부에서 1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작은 점. 오랜 시간 서울의 관문 역할을 했던 옛 서울역사다. 1900년 염천교 아래에 33제곱미터(10평)짜리 남대문정거장을 세운 것이 그 시초인데, 서대문형무소역사관만큼 직접적이진 않지만 이곳 서울역사가 지닌 아픔의 역사도 상당히 뿌리 깊다. 단순히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역사라서가 아니라 일본과 조선, 만주를 잇는 국제철도의 요충지였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대륙을 향한 일제의 야욕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물인 셈이다. 최근 이곳은 문화역서울 284로 다시 태어나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를 진행한다.
“일제의 대륙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아픈 시대의 유산.”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중구 통일로 1



고도 성장기 (1945년~87년)

경동교회

경동교회는 해방의 역사와 함께한다. 1945년 광복 직후 일본의 토착 종교인 천리교 사원들이 일제히 문을 닫았는데, 그중 3곳이 개신교 교회로 전환되었다. 영락교회와 성남교회, 그리고 경동교회다. 현재 경동교회가 사용하는 건물은 1981년 한국 근대건축계의 거장 김수근이 설계한 것이다. 특징은 교회 외관에 십자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붉은 네온등까지 붙여가며 번쩍거리는 무수한 교회 십자가들을 생각하면, 김수근이 왜 당대를 대표하는 건축가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예배당까지 들어오는 길은 예수가 골고다를 향해 걸어가던 최후의 길을 상징한다.
“도시 한복판, 소박한 순례길을 따라 오르다 그 길 끝에서 만난 신 의 존재.”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204



교보생명빌딩

주소부터 벌써 격이 다르다.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다. 종로 일대에서 약속을 정할 때면 한 번쯤은 나올 법한 이름. 여기는 교보생명 창립자인 신용호 전 명예회장이 당대의 빌딩 설계의 권위자 시저 펠리Cesar Pelli에게 의뢰해 완성한 교보생명빌딩이다. 일본 여행 중 주일 미국 대사관 빌딩에 반한 신용호는 시저 펠리에게 그와 똑같은 건물을 지어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황톳빛 나는 박스 형태의 건물 위를 유리 타일이 뒤덮고 있고, 1층부터 4층까지는 두꺼운 원형 기둥 4개가 건물을 지지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짚자리를 깔고 앉아 상소를 올리던 거리 위, 육중한 현대적 건물의 자태가 사뭇 인상적이다.
“주일 미국 대사관과 똑같은 모습으로 수십 년간 국가 상징 거리의 경관을 지배해온 대표적 랜드마크.”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



63스퀘어

남산보다 1미터 낮은 해발 264미터 높이에 총공사비만 1천8백억원. 여러모로 서울의 랜드마크를 자청하고 지은 건물답다. 실제로 지방의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지가 서울로 바뀌게 된 것도 63스퀘어가 개관한 이후부터라고 한다. 건물 전체가 탄력성을 지녀, 초속 30미터 내외의 태풍이나 진도 5 정도의 지진에도 내부 사람이 건물의 흔들림을 거의 느낄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전망대에 오르면 한강을 사이에 둔 두 땅덩어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63스퀘어는 밖에서 바라보는 외경도 눈부신데,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일출과 일몰 전후. 황금빛 유리에 반사되는 도시의 모습이 일종의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한때는 최대의 높이로, 현재는 최고의 우아함으로 사랑받는 건축 물.”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영등포구 63로 50



삼일빌딩

1971년 완공한 31층 높이의 삼일빌딩은 주한 프랑스 대사관과 함께 거장 김중업의 건축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였던 그는 귀국 후 서울 관철동 한복판에 거대한 마천루를 건설하며 모더니즘 건축의 정수를 알렸다. 완공 당시 정부종합청사를 제치고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었던 삼일빌딩. 이미 ‘국내 최고층’이란 수식어는 잃은 지 오래지만, 종로구 일대 경관을 압도하는 칼날 같은 존재감만큼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근대화의 바람이 휘몰아치던 1960년대 이후 서울이 비전을 품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간결한 반복, 탁월한 비례감으로 수도 서울의 미래 이미지를 대표 한 건축물.”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85



민주화 이후 (1987년~2015년)

세빛섬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2011년 완공 이후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와 문제점을 낳으며 표류하던 세빛둥둥섬이 지난해 10월 세빛섬으로 이름을 바꿔 공식 개장했다. 그간 이 섬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왔던 건 디자인 자체가 흉물스럽거나 자연 경관과 어울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실 ‘한강의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처음 언급됐을 때만 해도 세빛둥둥섬을 향한 시민들의 기대는 적지 않았다. 다만 빠른 시간 안에 ‘실적’을 쌓고 싶었던 일부 권력자들의 욕심이 화를 키웠다. 어떤 건물을 짓든 제대로 파악하고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정부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며 배운 셈이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 전에 일단 만들고 보자 생각했던 누군가의 욕망.”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서초구 올림픽대로 683



윤동주문학관

지난 2012년,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버려진 낡은 수도가압장 시설이 시詩를 담는 현대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죽어가던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담은 이는 건축가 이소진. 그녀는 재건축 과정에서 발견한 대형 물탱크 2개를 공간에 충분히 활용해, 하나는 영상 전시실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전시관의 중정으로 삼았다. 기존 공간의 특성을 활용하면서도 열림과 닫힘, 옛것과 새것, 빛과 공간이란 건축의 기본 명제를 정교하게 재구성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무엇보다 오늘날 도시 재생 건축의 역할과 의미를 전하는 가장 절묘한 레노베이션 건축물로 꼽힌다.
“시, 그 자체가 된 공간.”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최근 몇십 년 사이, 가장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오른 건축물이 아닐까.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이라크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환유의 풍경’을 콘셉트로 설계한 작품이다. 대지 면적 6만 2957제곱미터, 건축 면적 2만 5008제곱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도 규모지만, 어쨌든 확실한 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서울의 풍경을 양산해냈다는 사실. 세계 최대 규모의 3D 첨단 설계 기법인 빌딩 인포메이션 모델링을 시도했는데, 직선이나 벽이 없는 건물 내외부 사이로 액체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유연한 공간이 미끄러지듯 이어진다. 실제로 건축가들은 이 정도 규모 건축 프로젝트의 성과를 논하려면 10년은 지나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방인 건축가의 눈으로 본 동대문의 미래는, 바로 환유(?)의 풍 경.”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중구 을지로 281



어반하이브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논현역 방향을 바라보면 벌집 형태의 회백색 건물이 금세 눈에 띈다. 지름 1.05미터의 구멍이 3300개 가량 뚫려 있는 세련된 노출 콘크리트 건물. 건축사사무소 아르키움의 김인철 대표가 설계한 ‘도심 속 벌집’ 어반하이브다. 강남의 위압적인 고층 빌딩 숲 사이에서도 도도히 빛나는 이 건물은 맞은편에 위치한 라이벌 교보타워와 함께 강남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견고하기로 유명한 벌집 모양은 본래 건물을 지탱해주는 구조적 역할을 담당하는데, 건물의 구조 자체를 미적 요소로 변환시켜 호평받은 대표 사례다. 외부에서는 도저히 확인할 길이 없지만, 총 17층 높이의 빌딩이다.
“구조가 되면서 형태가 되는 3300개의 하얀 구멍들.” -최준석

  • LOCATION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476



MINI INTERVIEW

건축가 최준석과 나눈 서울의 건축 이야기

서울 사람들이 서울의 건축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가 뭘까? 일종의 매너리즘이 있다고 본다. 실제 여행지에서 만난 도시 와 내가 사는 도시는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가 전혀 다르다. 게 다가 한국은 광복 후 곧바로 전쟁이 일어나면서 정상적인 근 대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저 빠르게, 생각 없이, 현실적 인 목적을 위해 달려왔으니, 어떻게 보면 부조화를 이루는 것 이 당연하다. 왜 우리는 유럽 도시들처럼 옛것을 잘 보존하지 못했냐고 하는데, 이런 역사 속에서 더 큰 피해를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스럽지 않나. 건축가로서 느끼는 서울의 장점과 단점은? 서울엔 큰 강이 흐르고 산도 많아 비교적 다양한 경관을 마주할 수 있다. 사실 유럽만 해도 조금 여행하다보면 도시들이 차별성 없고 지겨 워진다. 역사적인 관점이 아니라 경관만을 보는 여행이라면 말이다. 서울은 그런 면에서 한결 다채롭다. 단점은 그래서 더 산만하고 정신없게 느껴진다는 거다. 시대의 보편적 정신이 건축에 영향을 미친다면, 시대별 건축 에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나? 일제 강점기의 건축은 대부분 우리가 지은 게 아니다. 전통 건축물의 맥이 끊긴 상태에서 타 인에 의해 강압적으로 지어진 거다. 즉, 강제적 건축들이다. 광복 이후부터는 어땠나? 전쟁이 끝난 뒤, 우린 빨리 잘살아 야 했다. 지저분한 곳은 밀어버리고 높은 건물을 잔뜩 지었다. 당시 건축은 크게 2가지였다. 아파트 아니면 종로나 을지로의 대규모 오피스 건물들. 이후 1990년이 되기 전까지는 앞만 보 고 달린 시기다. IMF로 정체되었다가 이제 막 정신을 차리고 우리 삶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즉, 건물 크기 나 높이만 따지는 권위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문화와 광고 효과, 인문학적인 가치 등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거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 건 최근 20년 사이의 일이다. 최근의 건축적 추세라든가 흐름은 어떤가? 나도 잘 모른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것이 글로벌화 됐다. 무언가가 하나의 조류를 형성하려면 대륙 간의 시간 차 이가 필요한데, 지금은 모든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무의미하다. 지금은 특별히 흐름이 없는 듯하다. 그저 각자의 취향대로 건물을 짓는다. 예를 들면 서울에 사는 한 건 축가가 포르투갈인 건축가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면, 그걸 자 신의 것으로 풀어내는 식이다. 서울의 건축적 미래를 위해서 정책적으로 어떤 시도들이 이 루어져야 할까? 어찌 보면 자원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데, 정책적 태도가 문제다. 중동이나 유럽의 좋은 사례를 보고 공 부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시간을 설정하고는 오 로지 실적을 위해 진행하겠다고 밀어붙인다. 그 장소에 어울 리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이런 부분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도 없이, 그저 한정적인 시간 안에 뭔가를 보여 주겠다고 나선다. 뭔가를 만들면, 그 효과가 아니라 결과물만 자신의 실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서울의 건축에 대해서 간단히 정의한다면? 역동적이다. 욕망의 덩어리? 시대의 거울? 진부해도 맞는 표현인 것 같다.



<2015년 9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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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16.06.04 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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