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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키나발루 정글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코타키나발루 정글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코타키나발루의 정글에서는 살인적인 무더위, 이름 모를 벌레,
부실한 먹거리 같은 악조건과 사투를 벌이지 않아도 된다.
리조트의 테라스에만 나가도 보르네오 정글의 풍요한 야생과 대면할 수 있다.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 닳고 닳은 이름. 휴가철마다 빈번히 거론되는 휴양지엔 호기심이 고이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휴가지에서는 대부분 숙박할 리조트의 퀄리티에 더 관심을 쏟게 된다. 출발 전, 주어진 정보는 하나뿐이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손꼽히는 프라이빗 리조트에 묵게 될 예정입니다.” 코타키나발루와 주변의 작은 섬들을 잇는 항구 제셀턴 포인트Jesselton Point에 도착할 때까지 나의 관심은 오직 ‘리조트의 시설과 수준’에만 머물러 있었다.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숙소로 들어가기 위해선 다시 보트를 타야 했다. 제셀턴 포인트에서 쾌속정을 타고 20분가량 달렸다. 빛 한 점 없는 밤, 비릿한 바다 냄새만 섬에 온 객을 반겼다. 리조트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주위를 둘러봤다. 언뜻 보이는 시커먼 야자수, 신원을 알 수 없는 검은 나무들. 발 아래께로 시선을 내렸다. 그 적은 광량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바다의 속살이 보였다. 피라미 같은 것들이 밤인 줄도 모르고 수정구 같은 물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공항에서 주워온 관광용 팸플릿을 다시 들췄다. “말레이시아의 원시 자연이 살아 있는 곳, 보르네오 정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방갈로에서 만나는 코럴 트라이앵글

맹그로브 숲과 코럴 트라이앵글 사이의 유일한 쉼터, 가야나 에코 리조트의 방갈로.

GO가 인간의 뇌를 닮은 뇌산호, 숫사슴의 뿔을 빼닮은 석산호 군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 사이를 능숙한 웨이브로 통과하는 열대어들의 섹시한 자태란! 산호초에 정신을 뺏겨 방심한 사이, 앙증맞은 쥐돔떼가 배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방해받고 싶지 않은(?) 허니무너를 위한 객실, 팜 빌라.


파디 다이브 센터는 스노클링과 다이빙의 출발 포인트이다.


코럴 트라이앵글에서 자갈만큼이나 흔한 불가사리들.


대왕조개의 앙증맞은 자태.


오션 뷰 방갈로에서는 ‘브렉 퍼스트 전용 보트’가 배달해주는 달콤한 아침을 맛볼 수 있다.


어젯밤 어딘지도 모르고 찾아들어온 이곳은 툰쿠 압둘 라만 국립공원Tunku Abdul Rahman National Park. 말레이시아 초대 국왕 툰쿠 압둘 라만이 손수 자신의 풀 네임을 붙이는 만행(?)을 저지를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섬이다. 키나발루 산Mt. Kinabalu과 남중국해를 동시에 품고 있는 해양 국립공원 안에는 가야 섬Palau Gaya, 마누칸 섬 Palau Manukan, 사피 섬 Palau Sapi, 마무틱 섬Palau Mamutik, 술럭 섬Palau Sulug 등 5개의 소도가 있다.

“우리가 와 있는 가야 섬은 코타키나발루 본토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요. 관광객들로 붐비는 마누칸 섬이나 사피 섬에 비하면 인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가로운 곳이죠.” 함께 아침을 먹던 가이드가 능숙하게 여행자를 위한 스크립트를 읊는다.

어젯밤에 몸을 누인 가야 섬의 베이스캠프, 가야나 에코 리조트Gayana Eco Resort는 이 구석진 야생 섬의 적막함을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바다를 마주 보는 44개의 독립 방갈로는 일상과의 완벽한 단절을 꿈꾸는 이들이 숨기 좋은 피난처다. 바다 위에 배처럼 떠 있는 방갈로의 테라스는 심해와 곧장 연결돼 있다. 계단 몇 개만 내려가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어종이 서식하는 코럴 트라이앵글Coral Triangle에 면한다. 코럴 트라이앵글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푸아뉴기니, 필리핀, 솔로몬제도, 동티모르까지 연결된 산호초 구역을 뜻한다. 다이버와 해양 학자들 사이에서는 ‘바다의 아마존’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산호의 76퍼센트에 해당하는 500여 종의 산호와 3000여 종의 물고기가 코럴 트라이앵글 지대에 서식한다. ‘핑크 소프트 코럴’, ‘크리스마스트리 벌레’ 등 이름만큼이나 희귀한 모습의 산호를 손쉽게 만난다.

코럴 트라이앵글에 몸을 담그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다. 가야나 에코 리조트 끝자락에 자리한 해양 생태 연구 센터Marine Ecology Research Centre(이하 MERC)에서는 코타키나발루의 해양 정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류와 산호초에 대한 정보를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 예습시켜준다.

“MERC는 지구 온난화로 코럴 트라이앵글의 생태 체계가 무너지고 산호가 멸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부상 입은 바다 생물들을 구조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들을 복원하는 것이 우리의 주요 활동이죠. 때 묻지 않은 가야 섬에 가야나 에코 리조트와 같은 위락 시설을 세운 건 MERC 프로젝트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보르네오 섬의 아름다움, 코럴 트라이앵글의 소중함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싶어요.” 센터의 연구소장 앨빈 웡이 힘주어 말했다.

MERC에서 가장 공력을 기울이는 연구는 해수 온도 상승과 지나친 남획으로 멸종 직전까지 갔던 대왕조개Giant Clam를 살리는 일이다. MERC의 연구원들은 어린 대왕조개를 적절한 시기까지 돌본 후 야생으로 돌려보낸다. “말레이시아에는 전 세계에서 서식하는 8종의 대왕조개 중 7종이 살고 있습니다. 그중 2종의 대왕조개가 멸종 위기에 처했었죠. 우리는 수년간 씨가 마를 뻔했던 대왕조개를 살려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어요. 다행히 두 종 모두 살려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직접 본 대왕조개의 크기는 이름만큼이나 엄청났다. 평균 몸길이는 120센티미터, 무게는 200킬로그램에 육박한다. 다이버들 사이에서는 ‘식인 조개’, 혹은 ‘살인 조개’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실제로 다이빙 중 대왕조개의 패각에 신체 일부가 끼어서 익사한 다이버들도 있단다. “조개가 사람을 공격한다는 뜻인가요?” 앨빈이 고개를 저었다. “오, 아니에요. 위험을 감지하고 방어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겁이 나서 엉겁결에 입을 다문 건데 운수 사나운 다이버들이 그 타이밍에 끼어버리는 거죠.”

MERC의 재간둥이 새끼 대왕조개가 밥 먹는 것을 구경한 후, 본격적으로 바다에 몸을 담그기로 했다. 파디 다이브 센터Padi Dive Centre에는 자격증 없는 생초보도 해양 정글을 누빌 수 있도록 에스코트하는 GO들이 상주한다. 수영은커녕 물에 뜰 줄도 모르는 나는 스노클링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그 위에 튜브까지 착용한 후 바다로 나갔다. 코끝만 살짝 박은 채로 바다 속을 훑었다. 언뜻 보기만 해도 수십 종은 족히 넘는 산호가 해저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동행한 GO가 인간의 뇌를 닮은 뇌산호brain coral, 숫사슴의 뿔을 빼닮은 석산호staghorn coral 군락으로 안내했다. 그 사이를 능숙한 웨이브로 통과하는 열대어들의 섹시한 자태란! 산호초에 정신을 뺏겨 방심한 사이, 눈과 지느러미에 샛노란 연지를 찍은 쥐돔떼가 배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열대어들의 몸뚱이에 행여 치명적인 독가시가 있는 건 아닌지, 만지기만 해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위험한 해파리들이 도처에서 내 생명을 노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입으로만 숨 쉬랴, 잠수경 물고 괴성 내지르랴, GO에게 여기저기 끌려다니랴 혼미했지만, 물 밖으로 나가긴 싫었다. 공포와 쾌락이 뒤엉킨 환각 비슷한 상태에서 나는 물결에 그냥 몸과 마음을 내려놨다.



키나발루 산 정글 탐험

키나발루 산에서 만날 수 있는 정글의 아이들.


40미터 상공에 매달린 아찔한 캐노피 워크.


붕아 라야 리조트와 키나발루 산에 진입하는 길.


키나발루 산 정상은 1년 내내 자욱한 안개 속에 숨어있다.


40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는 키나발루 산의 기묘한 꽃.


야외 레스토랑.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피자와 치킨을 굽는 화덕에 불을 지핀다.


“쉿. 멈춰요. 저 나무에 매달린 거 보여요?” 앞장선 트레킹 가이드가 걸음을 멈췄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나무와 풀때기만 보였다. “어딜 보라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둥지에 거무죽죽한 것이 붙어 있었다. 가만히 보니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도마뱀이 나뭇가지인 척하고 매달려 있다. 참빗처럼 생긴 볏은 긴장 때문인지 날이 바짝 서 있었다. “갑자기 달려들거나 그러진 않죠?” 야생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신중을 기했다. 괜히 가까이 갔다가 이마에 들러붙기라도 하면! 가이드가 사려 깊게 비웃음을 참으며 답했다. “이 도마뱀은 자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절대 움직이지 않아요.” 그러더니 바닥에 있는 꼬챙이 하나를 집어 들어 도마뱀 옆구리를 꾹꾹 찌른다. 몸이 밀리는데도 꿈쩍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고 작은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한참 보고 있으니 갈색이었던 몸뚱이가 슬슬 초록빛으로 변했다. 보통 몸놀림이 재빠른 야생 파충류를 촬영할 땐 흔들리지 않은 사진을 얻기가 힘들다. 이 기특한 아이는, 장시간 목석 같은 포즈를 취해준 덕에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자, 이제 출발합시다.” 가이드가 갈 길이 멀다며 재촉했다.

어제 바다 속은 족히 봤으므로 오늘은 산에 왔다. 가야 섬의 또 다른 베이스캠프 붕아 라야 아일랜드 리조트&스파Bunga Raya Island Resort&Spa의 뒷마당은 해발 4095미터, 동남아시아 최고봉으로 알려진 키나발루 산과 곧장 연결돼 있다. 키나발루는 사바Sabah 섬의 원주민 카다잔Kadazan족의 언어로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아키 나발루aki nabalu’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죽은 자의 안식처’로 부를 만큼 신성하게 여기는 곳인 까닭에 외부인의 발걸음이 허용된 것도 근래의 일이란다. 히말라야 8000미터 고봉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에겐 ‘연습장’으로 인기가 높지만 일반인이 쉽게 오를 수 있는 난도는 아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저지대의 밀림을 가볍게 산책하고 돌아간다.

키나발루 저지대 정글에 들어가자마자 만난 빗벼슬 도마뱀은 호들갑을 떨만큼 희귀한 경험이 아니었다. 숲을 걷는 동안 나무껍질 위에선 나무껍질 색, 낙엽 위에선 낙엽 색, 잎사귀 근처에선 잎 색을 하고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는 도마뱀과 여러 번 조우했다. 파충류를 모기만큼이나 싫어하지만 자기가 안 보일 거라 믿는 순진한 생명체가 귀여워서 쪼그려 앉아 오랫동안 구경했다.
능숙하게 길을 안내하던 피터가 또다시 눈을 반짝이며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제법 깊이 들어온 터라 괜히 긴장됐다. 그가 풀포기를 마구 헤집어 보여준 것은 작은 뱀이었다. 한 입 베어 물면 셀러리처럼 상큼한 맛이 날 것 같았다. 동행한 일행 중 몇몇이 끼악끼악, 까마귀 소리를 냈다. 촬영의 의무를 진 자에게 비명은 사치. 꾸역꾸역 올라오는 공포심을 억누르고 뱀 꼬리에 렌즈를 가져다댔다. 피터가 팔을 흔들며 주의를 줬다. “조심해요. 만약 뱀이 고개를 빳빳이 쳐든 상태로 멈춰 있으면 표적을 향해 자기 독침을 조준하고 있는 겁니다.” 그 순간 그 뱀이 그 자세였다고 왜 피터는 말해주지 않았을까? 무식이 겁쟁이 처자에게 용감을 불어넣어서, 만나는 동물마다 신나게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댔다. 만약 키나발루 산을 산책할 일이 있다면 혼자서는 배회하지 말길 바란다. 야생 흑돼지, 말레이곰, 느림보 늘보원숭이, 아르마딜로처럼 생긴 말레이천산갑 같은 동물들은 당신의 예상보다 훨씬 저지대에서 살고 있다.

키니발루 산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건 4000종에 달하는 식물들의 공이다. 사바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식물만 해도 무려 400여 종에 달한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1001>의 저자 애드리언 바넷에 의하면 키나발루에는 난초 750종, 나무고사리 60종, 야생 생강 30종, 낭상류 식물 15종이 살고 있다. 식물학자가 아닌 이상 그 많은 식물을 분간할 필요는 없다. 그저 정글 안에서 압도적인 개체수의 풀과 나무가 뿜어대는 피톤치드를 만끽하면 그만. 비에 젖은 숲에서 나는 향기는 사정없이 달라붙어 살을 물어 뜯는 모기 떼의 습격, 물컹이는 진흙의 불쾌한 촉감을 상쇄했다.
“이 나무는 베어도 베어도 끈질기게 다시 살아나는 신비의 나무예요. 원주민 말로는 통캇 알리tongkat ali라고 하는데 남자들의 정력에 엄청 좋습니다.” 피터가 가리킨 나무를 보는데 진시황이 불로초에 품은 집착 같은 것이 내 마음속에서도 뭉클, 일어났다. 잎사귀를 뜯어가서 차로 우려 먹으면 홍삼보다 효험 있을까? 껍질을 달여 먹는 게 더 나을까? 가만, 씨는 안 파나? 처자의 일그러진 탐욕을 읽은 피터가 설명을 이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통캇 알리를 마구 베거나, 뿌리채로 뽑아갔습니다. 키나발루 산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후로는 이곳에 있는 모든 식물은 채취가 금지됐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죠.”

키나발루 산은 유네스코의 따뜻한 보위 안에 있지만 보르네오 섬의 또 다른 정글은 무방비 상태다. 정력과 돈에 눈먼 인간들은 통캇 알리 같은 희귀식물뿐 아니라 입맛이 달아날 정도로 못생긴 천산갑 같은 동물마저 마구 포획하고 있다. ‘열대림 파괴의 심각성’을 성토하는 기사나 다큐멘터리를 봐도 동요 없던 이기심에 파문이 일었다. 고작 1시간 정글을 걸었을 뿐인데.


클리아스 강에서 바라 본 석양. 입에서 말을 앗는 풍경.



원숭이 습지로

인간의 시선을 의식한 긴코원숭이들의 재롱 쇼! 우스꽝스러운 코 때문에 네덜란드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클리아스 강으로 떠나는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 원숭이 탐사가 끝나면 이곳에서 말레이 전통식을 먹은 후 반딧불이 탐사를 떠난다.


사바 원주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마리마리 빌리지.

표주박 코를 가진 원숭이 한 마리가 나뭇잎 한 장을 쥐포처럼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아기 원숭이 한 마리는 자신들을 구경하는 괴생명체(?) 무리를 발견하고 겁에 질려 어미에게 쪼르르 내려가 안겼다. “와우!” 같은 장면을 본 모두가 그 앙증맞은 자태에 소리를 내질렀다.


코타키나발루 외곽에 위치한 클리아스 습지에는 희귀동물로 분류되는 긴코원숭이proboscis monkey가 산다. 원숭이를 보기 위해 2시간가량의 불편한 드라이브를 견뎌야 한다는 사실에 도착 전까지 튀어나온 입술을 좀처럼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고작 원숭이 몇 마리 때문에 왜 이 고생을 해야 하지? 웬만한 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리조트에서 길고양이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는 원숭이는 내게 수시간을 투자해서 보러갈 만큼 흥미로운 대상이 아니었다.

클리아스에서 만나는 긴코원숭이는 카메라를 빼앗을 타이밍을 호시탐탐 노리거나, 바나나를 안 주면 뒤통수를 후려치고 도망가는 부류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가오지 않으니 애가 탔다. 강 위에 있는 내내 우리는 동물 고린내가 나는 곳을 찾아 헤맸다. 원숭이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탄 지 30분가량 지난 시점, 멀리 동쪽에서 바람이 건드린 것 이상으로 몸을 떠는 나무가 보였다. 출발 전 가이드가 “흔들리는 나무의 꼭대기엔 틀림없이 긴코원숭이가 등을 돌린 채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어요. 보통 20~30마리가 무리 지어 활동하기 때문에 한 마리만 발견하면 주위에 다른 원숭이들도 쉽게 보입니다”라고 귀띔해준 것이 떠올랐다. 곧장 그곳으로 달렸다. 코앞에서 볼 수 있을 줄 알고 기대했으나 나무는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망원 렌즈를 망원경 삼아 표적을 향해 조준했다. 표주박 같은 코를 가진 원숭이 한 마리가 나뭇잎 한 장을 힘겹게 뜯어 쥐포처럼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갑자기 위쪽 가지가 휘청 흔들렸다. 아기 원숭이 한 마리가 자신들을 구경하는 괴생명체(?) 무리를 발견하고 겁에 질려 어미에게 쪼르르 내려가 안겼다. “와우!” 같은 장면을 본 모두가 그 앙증맞은 자태에 감탄사를 내질렀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원숭이에 정신 팔려서 미처 보지 못했던 주위를 둘러보는데, 하늘이 믿을 수 없이 붉었다. 갓 폭발한 용암 색이 저럴까? “코나키나발루 섬의 별명이 ‘황홀한 석양의 섬’인 거 아시나요? 여러분은 지금 산토리니, 피지와 함께 세계 3대 선셋으로 불리는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을 보고 있습니다.” 가이드가 큰 목소리로 운치를 깼다. 배는 해가 거의 기울어서야 선미를 돌렸다.

말레이시안의 일상식으로 대충 배를 채우고 다시 배에 올랐다. 어둠이 완연했다. 불빛이라고는 별빛뿐인 암흑의 밀림은 공포스러웠다. 옆에 앉은 사람이 좀비로 변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깊은 탄성이 들려왔다. 누군가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다급하게 흔들렸다. 가리킨 곳에서 나무 한 그루가 눈부신 빛을 내고 있었다.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 칠흑에 구멍 낼 기세로 날아다니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맹그로브 숲의 버렘방berembang 나무 아래에선 밤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오너먼트를 거느린 크리스마스트리를 볼 수 있어요. 반딧불이가 저 나뭇잎의 즙을 좋아하거든요.” 가이드가 행여 개똥벌레들이 놀랄세라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배의 모터도, 인간도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 빛들을 좇았다. 무리를 이탈한 빛 한 점이 하늘로 올라가 별에 몸을 섞는 순간. “What a romantic!”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관광객 한 명이 산통을 깨뜨렸다. 아무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보르네오 정글의 깊은 품 안에서 우리는 자연을 닮아가고 있었다.



정글 모험가를 위한 리스트

DO 세필록 오랑우탄 센터

전 세계에 있는 4군데의 오랑우탄 재활센터 중 한 곳. 코타키나발루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산다칸 지역에 있다. 어미에게 버림받았거나 부상당한 오랑우탄을 구조해 치료한 후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야생 오랑우탄의 습성을 적절한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지로, 여행객들은 센터에서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먹이를 주면서 조우할 수 있다. 카메라나 캠코더를 소지하고 들어갈 경우 입장료(30링깃) 외에 10링깃의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 TEL +60-89-531-180



DO 라북 베이 긴코원숭이 보호구역

클리아스 강 보트 위에서 이루어지는 긴코원숭이와의 만남은 감질 난다. 멀찌감치에서만 관찰해야 하는 탓이다. 라북 베이 긴코원숭이 보호구역Labuk Bay Proboscis Monkey Sanctuary에서는 긴코원숭이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 센터에서 제공하는 먹이를 주면서 ‘보르네오의 신사’라는 별명을 가진 이 희귀 원숭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들러볼 것. 단 당분을 섭취하지 못하는 특이 체질을 가졌으므로 절대 바나나를 주면 안 된다. 긴코원숭이들이 잘 먹는 음식은 팬케이크와 오이라고 하니 참고하자.




DO 캐노피 정글 워크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는 지상 40미터, 총길이 157미터의 흔들다리를 걷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붕아 라야 리조트에서 시작하는 트레킹 코스에도 만날 수 있지만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키나발루 국립공원으로 갈 것.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약 2시간 30분가량 가면 키나발루 국립공원에 당도한다. 근처의 포링 온천지역에서 자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 ‘라플레시아’도 찾아볼 것.

  • LOCATION Sabah Parks, 88806, Kota Kinabalu
  • TEL +60-88-211-585



DO 마리마리 컬처 빌리지

사바 주에 사는 원주민의 생활을 보고 겪을 수 있다. 사바족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카다잔, 두순 족을 포함해 바자우, 무루트 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비교하면서 관람하면 더 흥미롭다. 원주민의 혈통을 이어받은 청년들이 리조트의 GO처럼 전통 생활상을 재현하며 관람객과 함께 놀아준다. 전통 술 담그기, 대나무밥 해 먹기, 헤나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대중교통으로 닿을 수 없으므로 단독으로 찾아가기 보다는 현지 여행사의 반나절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STAY 가야나 에코 리조트

툰쿠 라만 국립공원에서 가장 청정한 환경을 자랑하는 가야 섬에서 체류하고자 하는 이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가야나 에코 리조트는 가야 섬에 존재하는 유일한 프라이빗 리조트. 2007년에 대규모 레노베이션을 시작해 2008년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수상가옥 형태의 독립형 방갈로는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행자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한다. 취향에 따라 정글 뷰, 라군 뷰, 맹그로브 뷰, 오션 뷰 타입의 객실을 선택하면 된다. 허니문 여행객들은 신축한 팜 빌라를 예약할 것. 코럴 트라이앵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침실과 바다와 연결된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야외 자쿠지를 갖췄다. 소파 아래 바닥에 유리를 깔아 바다 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STAY 붕아 라야 리조트

분가 라야는 말레이시아의 국화인 히비스커스를 의미한다. 이름에 걸맞게 리조트 곳곳에 수십 종의 히비스커스로 꾸며진 정원이 있다. 가야나 에코 리조트와 가야 섬을 나눠 쓰고 있으며, 깨끗하고 맑은 비치로 유명한 폴리스 비치와 곧장 연결되어 있다. 리조트 외에 다른 시설은 전혀 없기 때문에 오롯이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장점. 리조트 내 ‘솔라체 스파’에서는 키나발루 산에서 직접 채취한 허브로 말레이시아 전통 스타일의 스파 테라피를 받을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러닝머신을 탈 수 있는 짐gym도 붕아 라야 리조트가 자랑하는 시설. 정글 속에 흩어진 독채 빌라들은 ‘럭셔리 보르네오풍’의 진수를 보여준다.

  • LOCATION Malohom Bay, Gaya Is., Tunku Abdul Rahman Park, Kota Kinabalu
  • TEL +60-88-271-000
  • WEB www.bungarayaresort.com



GO

에어아시아를 타면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한다. 타 항공사보다 티켓 요금이 저렴해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에어아시아 전용 청사가 있어서 환승이 신속하고 편리한 것도 장점.




<2012년 12월호>
에디터 류진
취재 협조 에어아시아 www.airasia.com 가야나 에코 리조트 www.gayana-eco-resort.com 붕아 라야 아일랜드 리조트&스파 www.bungarayares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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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hetravellermagazine.co.kr/
최종 수정일 2016.06.04 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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