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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에 오를 시간

경주 남산에 오를 시간

경주 남산에 올랐다.
첫째 날은 사람보다 불상이 많은 길을,
둘째 날은 가파른 치유의 길을 걸었다.
하늘이 짙고 햇빛이 눈부신 가을이었다.

삼릉에서 용장골까지

해의 위치에 따라서 시간대별로 표정이 달라 보인다.


미리 밝히자면 본인은 경주에서 태어나고 그 뒤로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 20년간 경주 땅을 밟고 살았다. 경주에서 자라난 아이들이란 대체로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다. 반월성으로 소풍 가고, 학원 빼먹은 날은 노서동 고분군 잔디밭에 드러눕고, 일요일이면 등산 가자는 아버지의 등쌀에 못 이겨 남산을 오르던 기억.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한 나머지 외지 사람들보다 문화재에 대해서 무심할 때도 있다. 나 역시 남산에 어째서 그렇게 많은 불상과 탑이 있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그 자리에 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남산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마음에 수만가지 질문을 품고 왔다. 경주남산연구소의 김구석 소장이 믿음직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남산은 신라의 왕궁인 월성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40여 개의 계곡에 수많은 불적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노천박물관이라는 별명이 붙었죠.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후 남산을 부처가 머무는 신성한 산으로 여겼어요.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해도 왕릉 13기, 불상 118채,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672점의 문화 유적이 있습니다.” 제일 높은 봉우리가 494미터인 나지막한 산에 참 많은 재주를 부렸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경주가 신라의 천년 도읍이었던 점을 헤아리면 과한 것도 아니다. <삼국유사>에서 신라시대 경주의 모습을 묘사하길 “절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숱하게 널려 있고, 탑은 기러기 떼가 줄지어 날듯 솟아 있다”고 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유적들은 큰 태풍이 땅을 헤집어놓을 때마다 세상에 고개를 내민다.

남산에는 제멋대로 구부러진 소나무가 많다. 삼릉 옆 소나무 숲에 안개가 낄 때가 진풍경이다.


용장사지삼층석탑. 동남산 능선에 자리 잡아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등대가 된다.


경주 남산이 처음이라면 서남산 코스가 제격이다. 동남산에 비해 경사가 완만하고 신라시대의 석불을 시대별로 만날 수 있는 곳. 초행자의 마음으로 남산에 올랐다.
시작점은 삼릉이다. 3개의 봉분 옆으로 크고 작고 가늘고 굵은 소나무들이 제멋대로 구불거리며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삼릉에서 시작되는 소나무 숲은 금오봉의 꼭대기까지 이어진다. 울퉁불퉁한 바위산에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다. 산길을 얼마 지나지 않아 최초의 불상이 나타났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은 널찍한 바위에 아주 편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인상적인 건 실오라기가 한 올씩 살아 있는 듯한 매듭. 옷 주름과 매듭이 뒷면까지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불상의 머리가 없다. 손 부분도 심하게 훼손되었다. 남산에서는 이렇게 머리 없는 불상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파손했거나, 일부는 불상이 넘어지면서 가장 약한 부분인 목부터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나중에 땅속에 묻혀 있던 불상의 머리가 발견되어 복원되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숨이 차다 싶을 때쯤 불상이 나타나 발길을 멈췄다. 키를 훌쩍 넘는 바위마다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 손의 모양도, 표정도, 새겨진 시기도 제각각이다. 그중에서도 선각육존불은 경주에서 보기 드물게 선각으로만 새겨져 있다. 마치 거대한 바위에 그림을 그린 듯하다. 길은 선각육존불 위로 나 있어 불경스럽게도 부처님의 머리를 밟고 다음 장소를 찾아 나섰다. 상선암이라는 작은 절을 지나면 상선암 마애대좌불이 남산을 찾는 중생을 기다린다.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이다. 얼굴 앞면과 귀 부분까지는 섬세하게 새겨진 반면, 머리 뒷부분과 몸통은 바위에서 나오다 말았다. 석공이 게으름을 피웠을 리가 없다. ‘신라의 석공은 바위에 불상을 새기지 않고, 본래 바위에 들어 있는 불상을 찾아낸다’는 말이 있다. 당시 신라 사람들은 ‘부처는 법당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잘생긴 바위나 속세와 절연된 곳에 머물면서 가끔 필요할 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과 사귀면서 중생을 계도한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마애대좌불도 바위에서 튀어나오는 형상이다.

바둑 바위에서 내려다본 서라벌은 가을볕을 받아 눈이 부셨다. 금빛으로 익은 곡식과 나지막한 건물이 끝없이 이어진다. 오전에 출발했다면 딱 도시락을 먹기 좋은 장소다. 바둑 바위는 신선이 바둑을 두고 놀다 갔단 전설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여기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오르막길에 본 불상만으로 충분하다 싶은 사람은 돌아온 길을 내려갈 것이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금오봉 고갯길을 넘을 것이다. 후자를 선택했다.

용장골로 내려간다. 용장사의 흔적은 계곡의 이름과 절의 축대로만 남아 있다. 세조 때 김시습이 이곳에 7년 동안 기거하면서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썼다고 하니 조선 초기까지는 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풀만 무성한 절터 대신 용장사지삼층석탑과 마주하려고 이곳까지 왔다. 너른 터의 가장자리, 밑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 맞닿은 곳에 용장사지삼층석탑이 서 있다. 이 석탑이 특별한 이유는 하층 기단을 따로 만들지 않고 높이 200미터가량 되는 산의 바위를 기단 삼아 탑을 올렸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라는 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삼릉골로 올라올 때보다는 내려가는 길이 더 험하다. 대신 고개를 들면 언제나 용장사지삼층석탑이 내려다보고 있다.


칠불암 새벽 산행

서출지는 쥐의 안내로 까마귀를 따라가 왕을 시해하려던 음모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가을을 맞아 코스모스가 만발했다.


좁은 산길 따라 칠불암 가는 길. 남산에는 바위와 옥돌. 소나무가 많다.


칠불암을 방문한 손님들이 기왓장에 그린 그림. 보통은 기왓장에 건강을 기원하는 뜻으로 가족의 이름을 적거나 소원하는 문구를 적곤 한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구름 위에서 노니는 형상이 일품이다.
세 발짝만 뒤로 물러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스릴만점인 곳


서남산 삼릉골의 석조여래좌상.


새벽 4시 30분에 눈을 떴다. 신선암에서 일출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깜깜한 밤을 헤치고 걸었다. 동남산 탐방의 출발점은 서출지. 산길이 좁고 가팔라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났다. 잊을 만하면 불상이 튀어나와 발걸음을 멎게 하던 서남산과는 달리 칠불암까지 가는 길은 묵묵히 걷기만 하는 여정이다. 칠불암에 도착하기 직전 마지막 시험 관문은 141계단. 도저히 못 걷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쯤 평평한 땅이 눈앞에 펼쳐진다. 동명의 작은 암자와 칠불암 마애불상군이 어스름한 새벽빛을 받고 있었다.

목적지인 신선암까지 올라가 해가 뜨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정표가 없었다면 칠불암 마애불상군 뒤의 높게 솟은 기암괴석을 타고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길을 잘못 들었다 싶다가도 이정표를 믿고 단호하게 앞으로 간다. 바로 다음의 안전한 발걸음을 내딛기 바쁘게 바위 사이를 돌고 돌다 보면 조그만 바위가 길을 막아선다. 그 뒷면에서 신성암 마애보살반가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애보살반가상을 보는 순간 새벽에 일어난 피곤함과 방금 전 바위를 오르며 뱉은 한숨이 사그라졌다. 보살상은 마치 어제 조각한 듯 뚜렷하다.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설법하는 모양, 앉은 자리 아래로 옷이 흘러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가부좌를 풀고 아래로 늘어뜨린 것이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했다. 아쉽게도 날이 흐려 일출은 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섭섭한 마음은 칠불암의 아침 공양으로 다스렸다. 소박한 몇 가지 나물 찬과 단호박 국이 속을 따뜻하게 데운다. 새벽, 동이 트기 무섭게 칠불암을 찾은 첫 손님에게 예진 스님은 선뜻 밥 한 그릇을 내주셨다. “흔히 칠불암을 ‘남산의 꽃’이라고 하죠.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걸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라 음양의 조화가 온전히 맞물립니다. 칠불암에서 기도를 올리고 나서 병을 고쳤다는 사람이 많았대요. 그래서 칠불암 올라오는 길을 ‘치유의 길’이라고도 합니다.”

주변이 밝아오니 산이 제대로 보였다. 다 자라서 보니 경주 남산은 높이가 높은 산도 그렇다고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산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남산을 보지 않고 어떻게 경주에 다녀갔다 할 수 있겠는가. 이곳에 오르지 않고 어떻게 신라를 상상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반반한 바위마다 석공이 칼을 댄 것처럼, 사람들은 평평한 자리마다 조그만 돌을 쌓아 돌탑을 쌓아 올렸다. 맨 밑에 깔린 돌과 가장 꼭대기의 돌 사이에는 천년의 시공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남산 가이드 받는법

경주남산연구소 경주 남산이 초행이라면 남산의 지리와 역사에 밝은 가이드와 동행하는 편이 좋다. 경주남산연구소에서는 매주 주말과 공휴일 ‘남산 유적 답사’를 시행한다. 상릉 코스, 동남산 코스, 남산 산책 등 5개의 정규 코스가 있고 그 길에 문화유산해설사가 동행한다.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무료로 참여 가능하다.




남산 기슭에서 묵어갈 만한 곳

야선미술관 야선미술관은 선화 화가인 야선 박정희가 3년여에 걸쳐 짓고 꾸민 전통 한옥이다. 천연 염색한 이불을 덮고 군불을 뗀 황토방에서 묵을 수 있다. 선식 전문가이기도 한 주인 덕분에 직접 가꾸고 채취한 만든 건강한 밥상을 만날 수 있다.

  • LOCATION 경주시 남상동 1156-33
  • WEB yasungallery.blog.me


'남산도 식후경' 하는법

삼릉 고향 손칼국수 쌀, 보리, 콩, 들깨를 넣어 국물을 내고, 경주 밀을 이용해서 납작한 국수를 만든다. 진하고 고소한 국물이 별미다. 칼국수도 특허까지 냈다.

  • LOCATION 경주시 배동 821-1
  • TEL 054-745-1038



<2012년 11월호>
에디터 김윤정
포토그래퍼 전재호
촬영 협조 경주남산연구소·스토리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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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16.06.04 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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