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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토박이들의 동네 트라스테베레

로마 토박이들의 동네 트라스테베레

테베레 강을 가로지르는 시스토 다리를 사이에 두고
강 바깥쪽엔 제국 시대의 휘황찬란한 고전 건축물과 문화가,
안쪽엔 낡았지만 소소하고 낭만적인 골목 문화가 있다.
‘테베레 강 저편’이라는 뜻을 가진 트라스테베레에서 길을 잃은 시간.

트라스테베레 토박이의 단골 맛집

자니콜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2700여 년의 역사를 품은 로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자니콜로 언덕이 가장 아름다운 시각은 석양 무렵이다. 트라스테베레를 슬렁슬렁 걷다가 해지기 30분 전쯤 오르면 절정의 순간에 정상에 서 있을 수 있다.

“빛바랜 붉은 벽돌, 담백한 상아색 외벽, 오래된 청동 지붕이 그리는 풍경 앞에서 감탄 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해가 기우는 주홍빛 하늘 아래서 바라본 로마는 스무 살의 소피아 로렌보다 더 섹시하고 예뻤다.”


골목 전체에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점심때까지 먹은 거라곤 젤라토 한 주걱뿐. 꼬르륵. 배가 요란한 기세로 냄새에 반응하고 있다. “이 집에서 피망 굽고 있나 봐요. 피망을 얇게 썰어서 오븐에 초벌로 익힌 다음 올리브유 휘익 두르고 다른 채소들이랑 같이 한 번 더 구워내면 딱 이 냄새가 나거든요. 아, 맛있겠다.” 로마에서 6년째 살고 있는 친구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나는 지금 몇 끼 굶은 거지처럼 남의 집 오븐에서 뭐가 익고 있는지 예민하게 추적할 수 있는 동네, 트라스테베레를 배회하고 있다. 당신이 만약 스페인 계단과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의 와글대는 인파, 불굴의 의지로 끈덕지게 달라붙는 잡상인 때문에 현기증을 느낀 적이 있다면 이곳이 꽤 마음에 들 거다. 바람이 불면 창가에 내건 빨래에선 향긋한 세제 냄새를, 비좁은 골목을 걸을 땐 옆을 지나는 노인의 외투에서 오래된 옷장 냄새를 느낄 수 있는 동네. 트라스테베레에선 로마 사람들의 일상을 도시의 어느 곳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맡고 겪을 수 있다.

오래전부터 트라스테베레는 다양한 문화가 자리를 잡은 지역이었다. 공화국 시절에는 로마인뿐 아니라 유대인과 시리아인들이 모여 살았다. 노예부터 귀족까지 직업과 지위를 막론하고 함께 어울려 다채롭고 독특한 문화를 일군 곳. 트라스테베레 주민들은 스스로를 ‘진정한 로마인’이라고 자부한다.

“맞아요. 옛날이 참 좋았지. 로마 토박이들만 살았거든. 지금처럼 가게가 많거나 교통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동네가 참 조용했다오. 이웃 사이도 꽤 돈독했구. 지금은 너무 번화가가 돼버려서 아쉬워.” 트라스테베레에서 88년 동안 성업 중인 디저트 가게, 발자니에서 만난 비르지니아 할머니가 말했다.

“옛날엔 주로 장인들이 많이 살았다우. 모자 만드는 사람, 신발 만드는 사람, 옷 짓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그래서 집집마다 얘깃거리가 참 많았지.”
“할머니는 남편이랑 결혼한 후부터 동네에 살게 된 거예요?”
“아니. 여기 트라스테베레가 내 고향이야.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고.”
맙소사. 그럼 <로마의 휴일>을 촬영할 때도 로마에 살았다는 얘기인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당시의 에피소드 같은 것을 묻자 돌아온 답. “로마의 휴일? 그게 뭐지?” 귀를 의심했다. 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로마 로망’을 심어준 그레고리 팩, 오드리 헵번, 스페인 계단, 베스파 같은 단어를 운운하며 할머니의 기억력을 되살리려고 애썼다.“아무리 들어도 난 모르겠어. 누가 나온다고? 유명한 영화야?”

전형적인 관광구역에서 살짝 비켜 살았던 로마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당대의 화제에 이렇게나 무심하다. 트라스테베레가 지금도 때 묻지 않은 동네 정서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이유다. 비르지니아 할머니와 안녕을 고하기 전, 이 걷기 좋은 동네에서 한 세기 가까이 살아온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 코스가 궁금했다.

“아가씨. 미안하지만 난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서 산책 같은 건 못해. 그냥 서 있기도 이렇게 힘든걸.”
“지금 말고요, 할머니. 다리가 튼튼했던 시절에 좋아했던 길이요.”
그리하여 트라스테베레의 랜드마크인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광장 Piazza di Santa Maria in Trastevere,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in Trastevere도 그냥 지나치고, 우리는 할머니가 곧잘 걸었던 시절(?)의 산책길, 자니콜로 Gianicolo로 향하고 있었다. 자니콜로가 로마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라는 사실을 진즉 알았다면 언덕이 시작되는 주세페 가리발디 거리Via Giuseppe Garibaldi 초입에서 발길을 돌렸을 텐데. 정말이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보였다. 이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는 이라고는 우리 일행과 낡은 배낭과 허리 색을 피붙이처럼 매고 다니는 독일인 부부뿐. 경사가 가팔라서 대부분은 차를 타고 오른다. 덕분에 숨을 헐떡일 때마다 양껏 들어오는 매연이 온몸 구석구석을 채웠다.

“자니콜로 언덕을 오를 때 공기를 천천히 마셔봐요. 로마 근처에 바다가 있는 건 알지요? 가만히 공기 냄새를 맡아보면 바닷내가 날 거예요. 나는 맑은 풀내랑 비릿한 짠 내가 섞인 그 공기를 참 좋아했다우.”
할머니가 낭만에 겨운 눈빛으로 말해준 그 감흥은 반세기 전의 일이었나? 도대체 맑은 공기가 어디에 있다는 거지? 앞차가 뿜고 간 매연에 연신 콜록이면서 오르는 내내 이 고행이 어서 끝나기를 기도했다.

천천히 걷고 또 걸은 끝에 드디어 가리발디 장군과 감격 상봉! 자니콜로 언덕의 고지에는 가리발디 장군이 말 위에서 포효하는 동상이 세워진 가리발디 광장 Piazza Garibaldi 이 있다. 이탈리아 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국민 영웅이다. 광장에 오르니 로마 시내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빛바랜 붉은 벽돌, 담백한 상아색 외벽, 오래된 청동 지붕이 그리는 풍경 앞에서 감탄 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해가 기우는 주홍빛 하늘 아래서 바라본 로마는 스무 살의 소피아 로렌보다 더 섹시하고 예뻤다. 뜻하지 않게 너무 많이 걸어 서 잔뜩 심술난 마음이 풍광 앞에서 거짓말처럼 누그러졌다.



아리스토캄포 Aristocampo

아리스토캄포의 인기 메뉴 중 하나인 라자냐. 토마토소스의 풍미가 깊고 진하다.


거리가 비교적 한산해서 노천에 앉아 식사를 즐기기에도 좋다.

“We are against war and tourist menu(우리는 전쟁과 관광객 전용 메뉴에 반대한다).” 로마의 많은 식당들이 호객을 위해 저렴한 세트 메뉴를 구성해 판다. 아리스토캄포는 입구에 공표한 위 슬로건으로 타 식당의 전략을 알량하게 만든다.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라는 심보다.

자신감만큼 맛도 있을까? 아리스토캄포를 점심 연료 기지로 선택했다. 메뉴엔 파스타와 피자, 라자냐 등 전형적인 로마 가정식이 있다. 토마토소스와 돼지 볼살을 주재료로 한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를 주문했다. 따로 요청하지 않을 경우 파스타 면은 알 덴테al dente(면을 살짝 덜 익힌 것) 상태로 나온다. 음식이 그릇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양이 푸짐하다. 모양새보단 맛에 신경 쓴 태가 난다. 아마트리치아나는 싱싱한 돼지 기름과 새콤한 토마토소스가 어우러져 고소한 맛이 났다. 겉이 바삭해질 정도로 푹 익히는 라자냐와 카르보나라, 알프레도 파스타도 아리스토캄포의 인기 메뉴.

  • LOCATION Via della Lungaretta 75, Trastevere, Roma
  • TEL +39-06-5833-5530 WEB www.aristocampo.com



파스티체리아 발자니 Pasticceria Valzani

트라스테베레에서 88년간 제자리를 지킨 디저트 가게, 발자니.


발자니의 로마식 디저트.


발자니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벽.

로마에서 유난히 단것이 당겼다. 특히 하루 2만 보 이상 걸은 날이나 에스프레소가 유난히 쓴 카페에서는 더더욱. 트라스테베레 사람들은 그럴 때 파스티체리아 발자니에 간다. 로마의 전통 과자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발자니는 1906년에 태어난 로마 청년 빈첸조가 1925년에 문을 열었다. 오래된 가게답게 외관이 촌스럽고 정겹다. 빈첸조의 부인 비르지니아 여사는 할머니가 된 지금도 카운터를 지킨다. 올해 나이가 무려 92세다. 발자니의 스테디셀러는 페이스트리를 관이나 나팔 모양으로 만든 뒤 속을 리코타 치즈 혹은 초콜릿, 레몬, 너트를 섞어 채운 카놀리. 럼이나 와인에 흠뻑 적신 스펀지 빵 사이에 커스터드 크림을 채운 추파 잉글레제도 인기가 높다. 비르지니아 여사에게 발자니의 꾸준한 인기 비결을 물었다 “우유와 설탕을 일절 쓰지 않는다우. 달콤한 맛은 과일이나 꿀로 내고 초콜릿이나 말린 과일, 너트만으로 만들지. 지금 로마에서 이런 정통 레시피로 돌체를 만드는 덴 거의 없을 거예요.”

발자니가 지금까지 영업을 하는 건 건 장사가 잘돼서라기보단 사명에 가깝다. “우리 아들이 가게를 이어받기로 했어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에겐 이 가게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요.” 이 근사한 과자는 로마를 기억하는 특별한 선물로도 제격이다.

  • LOCATION Via del Moro 37 a/b, Trastevere, Roma
  • TEL +39-06-580 WEB www.valzani.it



피오르 디 루나 Fior di Luna

피오르 디 루나의 외관.


우유의 도움 없이 순수한 재철 식재료로 만드는 젤라토. 뒷맛이 깔끔하다.


컵 단위로만 판매한다. 가격은 2유로에서 4유로 사이.

“우리 가게에선 젤라토에 우유를 넣지 않습니다.” 피오르 디 루나의 주인이 우쭐한 얼굴로 말했다. 우유를 안 넣는 게 왜 자랑스럽지? “우유가 재료의 원래 맛을 가리거든요.” 로마에서 우유를 안 쓰는 젤라토 집은 손에 꼽는다. 재료의 신선도에 배로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인기 있다는 초콜릿 맛을 골라 한 술 떴다. 차가운 초콜릿 셔벗을 먹는 기분이었다.

피오르 디 루나의 본점은 몬테베르데Monteverde 지역에 위치했다. 트라스테베레 지구에 위치한 이곳은 아버지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아들이 낸 2호점.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또 다른 베스트셀러를 청했다. “딸기 맛도 인기가 좋은데 지금은 없어요. 과일은 제철, 지역 식재료만 쓰거든요.” 대신 권한 감 맛을 받아들었다. 맛있을까? 떫진 않을까? 한 술 떠 입에 넣었다. 살짝 얼린 청도 반시의 차가운 속살 맛이 났다. 아, 한갓 아이스크림이 이런 맛을 이룩할 수 있나? 피오르 디 루나 주인아저씨가 왜 의기양양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 LOCATION Via della Lungaretta 96, Trastevere, Roma
  • TEL +39-06-6456-1314
  • WEB www.fiordiluna.com



판 운토 Pan’ Unto

여행자보다 로마의 로컬이 더 즐겨 찾는다.

트라스테베레 지구에서 ‘지금 가장 잘나가는’ 피제리아를 찾고 싶었다. 선택 기준은 단 하나. 주말 저녁 트라스테베레에서 피자를 먹으려고 기다리는 줄의 길이가 가장 긴 곳일 것. 무수한 경쟁자를 제치고 판 운토가 낙점됐다. 홀에는 관광객보다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로마나 커플, 외식나온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붐비는 인파 틈을 비집고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받았다. 눈을 의심했다. 피자 1판 가격이 고작 3~5유로라니? 주인에게 마트리치아나 피자를 추천받았다. “마르게리타 피자에 햄과 양파를 푸짐하게 얹은 피자라고 생각하면 돼요. 판 운토에서 제일 잘나가는 메뉴죠.” 토핑도 싱싱했지만 도우 맛이 더 놀라웠다. 적당히 얇고 바삭한 식감에 맛도 고소했다. 서울에선 헛배 부를까봐 늘 남겼던 도우를 이곳에서는 남김없이 다 먹었다.

“첫 반죽의 물기, 마지막 단계에서 올리브유와 물의 양을 조절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반죽의 찰기를 최대한 살리는 저만의 비법이 있죠.” 피자 이올로가 비밀스럽게 맛의 비결을 귀띔했다. 마트리치아나 피자와 함께 화이트소스 베이스에 햄과 버섯을 토핑한 크로스티노 피자도 베스트셀러.

  • LOCATION Piazza di San Rufina 2, Trastevere, Roma
  • TEL +39-392-158-158-2414



<2013년 12월호>
에디터 류진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ENIT이탈리아정부관광청 www.italiantourism.com 핀에어 www.finair.com/kr 하나투어 www.hana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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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hetravellermagazine.co.kr/
최종 수정일 2016.06.04 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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