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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시간을 잊은 골목

베이징, 시간을 잊은 골목

베이징의 뒷골목, 후퉁에서 길을 잃었다.
수백 년간 베이징인들의 삶을 지켜 본 좁고 낡은 길엔 청나라의 고관대작이 살던 스허위안,
명나라 시절 장군의 마구간 같은 공간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있다.
맨해튼의 마천루를 위협하는 도시 개발의 열기 속에서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풍경이다.

스차하이 호숫가. 베이징 젊은이들의 단골 데이트 장소다.


난뤄구샹은 이미 상업화 됐지만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순수한 옛 풍경과 만난다.

“베이징 사람들은 휘황한 유적보다 낡고 오래된 후퉁에 쌓인 시간의 켜를 더 좋아한다. 거기에 진짜 베이징인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흙바람 없고 따뜻한 날, 베이징 사람들은 후퉁 한가운데 자리를 깔고 이웃과 저녁밥을 나눈다.”

시간을 잊기에 베이징만 한 도시가 있을까? 베이징은 고도 古都 중 고도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30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것 중엔 자금성, 이화원과 같은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다. 압도적이긴 하지만 감동은 짧다. 마음을 움직이는 건 후퉁胡同과 스허위안四合院. 원나라 때부터 형성된 베이징의 뒷골목과 명, 청 시대의 전통 가옥을 칭하는 말이다. 베이징 사람들은 휘황한 유적보다 낡고 오래된 후퉁에 쌓인 시간의 켜를 더 좋아한다.

거기에 진짜 베이징인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흙바람 없고 따뜻한 날, 베이징 사람들은 후퉁 한가운데 자리를 깔고 앞집, 옆집과 저녁밥을 나눴다. 그리고 스허위안에서 4대가 함께 모여 사는 것을 으뜸가는 행복으로 여겼다. 베이징인의 저력은 후퉁과 스허위안이 만들어주는 ‘합’의 문화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안타깝게도 매우 많은 후퉁이 불도저에 밀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달갑지 않은 기폭약이다. 외성 지역의 후퉁이 도시화의 수순으로 천천히 사라졌다면 시 중심부의 중요 후퉁은 가공할 만한 속도로 철거됐다. 천안문 광장을 지나는 창안지에 長安街 지역의 후퉁, 명, 청 시대의 스허위안이 훌륭한 상태로 보존됐던 첸먼따지에前門大街 지역의 후퉁, 베이징 최고 最古 의 시장인 따자란 大柵欄 시장이 있는 따자란 후퉁이 속수무책으로 지도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광장과 마천루가 극렬한 기세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고유함을 지켰던 베이징은 이제 세계 건축가들이 사랑하는 건축 실험장이 됐다. 렘 콜하스, 폴 앙드뢰, 자크 헤르조그와 같은 스타 건축가들은 자국에서 실현하지 못했던 위험한 꿈을 남의 나라 도시에서 마음껏 펼치고 있다. 후퉁에 진동하던 공동 화장실의 지린내, 지저분하고 누추한 풍경은 더 이상 없지만 베이징은 미국의 뉴욕, 도쿄의 신주쿠, 홍콩의 센트럴 지구와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을 가진 도시가 됐다.

베이징의 세월이 퇴적된 공간은 이제 서울만큼이나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그 와중에 다행히 숨을 부지한 곳들은 있다. 과거 베이징의 풍경을 간직한 최후의 보루 스차하이 什刹海 지구,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후퉁 난뤄구샹 南己鼓巷 거리, 오래된 물건이 정처 없이 떠도는 판자위엔 潘家園 골동품 시장, 5세기 전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촌 촨디샤춘 底下村 을 행선 목록에 올렸다. 그곳에서 여행자의 관심이 닿지 않은 안쪽의 풍경, 놓친 이야기를 짚으며 걸었다.

개발론의 맹렬한 기세에 숨죽였던 라오베이징 老北京 의 모습이 하나 둘씩 살아났던 시간들.


스허위안의 북방. 연장자가 기거하는 공간이다.


북방 창에 붙어 있던 ‘쌍희 희囍’자. ‘기쁠 희’자 2개가 합쳐진 글자로 복을 기원하는 의미다.


장씨네 집 곳곳엔 옛 시절에 사용했던 소품들이 남아 있다.


마당은 가족의 우애를 다지는 거실 역할을 한다.


자전거와 사람만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후퉁.

스허위안 전경. 대문은 작게, 담은 높게 하는 것이 전통이다.

에 스차하이가 살아남은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스차하이 지구의 원형을 간직한 3채의 스허위안은 관광객을 위해 박물관처럼 개방되어 있다. 인력거꾼에게 요청하면 셋 중 한 곳으로 데려다준다. 우리가 찾은 곳은 ‘장씨네 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400년 된 스허위안이다. “사합원四合院의 사四는 동서남북을, 합合은 사면의 집이 모여 가옥의 모양이 ‘입 구口’ 자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4대 한 가족이 모여 살았던 전통적인 고택이죠. 풍수와 음양오행 사상을 철저히 반영해 지어진 건물이에요. 스허위안에 얽힌 이야기들만 알아도 베이징인들의 역사와 삶을 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의 나라 역사는 대개 지루하지만 400년 된 주택 안에서 듣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햇빛이 잘 들고 따뜻한 북쪽의 정방은 집의 주인이자 연장자가 기거하는 곳입니다. 햇빛이 가장 먼저 드는 동쪽 사랑채는 아들, 달을 마주하는 서쪽 사랑채는 딸의 방이고요. 동방을 아들에게 준 건 일출의 정기를 받고 출세하라는 의미였죠. 마지막으로 춥고 어두운 남쪽 방은 하인이 기거하거나 창고로 사용되는 공간입니다.”

스허위안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마당이다. 누가 살건, 평수가 얼마나 되건, 재산이 얼마이건 상관없이 두 그루 이상의 나무와 어항을 꼭 둔단다. “한 그루만 심으면 마당을 뜻하는 ‘입 구口’자 안에 ‘나무 목木’자가 들어서서 ‘곤할 곤困’자의 형상이 되거든요. 그래서 꼭 두 그루 이상 심습니다. 어항은 재물을 뜻하는 금붕어를 들이기 위한 것이고요.”

아들을 낳은 후실, 못 낳은 첩의 기거지까지 둘러보는데 어찌 된 일인지 화장실이 없다.

“스허위안은 사방이 막혀 있어서 바람, 황사, 도둑을 막는 데는 유리하지만 통풍이 안 되는 단점이 있어요. 그래서 집 안에 화장실이 없습니다. 대신 골목에 공동 화장실이 있죠. 아침마다 긴 줄이 펼쳐지는데 이때 화장실 앞은 마을 사랑방이나 다름없습니다.”

볼일 보려고 기다리는 와중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 누군가는 뒷담화를 조잘대고 어떤 청춘은 사랑에 빠졌겠지. 가이드의 세세한 이야기들이 어느새 현실의 장면이 돼서 눈앞에 펼쳐졌다. 스차하이에 흐르는 시간이 4세기 전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난뤄구샹, 후퉁 산책

난뤄구샹은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다. 800여 년 전 원나라 때 조성됐다. 당시엔 곡물 가게, 기름집, 정육점, 약국, 철물점 같은 작은 상점들이 거리의 주인이었다. 명, 청 시대엔 모습이 바뀌었다. 명나라 때는 무관들이, 청나라 때는 왕족이 모여 살았다. 700여 년 이상 베이징의 ‘강남’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정부 고관들의 거주지였던 근대까지 난뤄구샹의 모습엔 큰 변화가 없었다. 격변은 근래에 일어난 일이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과 상점이 들어서기 시작한 2003년부터 베이징 지하철 8호선의 진입과 함께 주요 후퉁 30개 번지가 철거된 2009년을 거치면서 난뤄구샹은 본격 상업 지구가 됐다.

지금 난뤄구샹은 서울의 인사동, 삼청동과 비슷하다. 최고最古의 거리라는 수식을 듣고 찾았지만 중심가엔 흉내 낸 옛 모습만 가득했다. 고요히 산책하기는 더 어렵다. 800여 미터가량 뻗은 직로엔 난뤄구샹의 맛집을 찾아온 베이징 시민들,외국인 관광객들, 열렬한 목소리로 호객하는 인력거꾼들이 뒤엉켜 있었다. 소란한 풍경을 헤치고 걸음을 뗐다.

잘 차려입은 젊은이 사이로 삼삼오오 모여 앉은 노인들이 보였다. 난뤄구샹에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이다. 난뤄구샹의 ‘진짜’ 오래된 길을 보고 싶다면 이들의 뒤를 쫓길 권한다. 중심가에서 동서 방향으로 난 곁길, 16개의 후퉁엔 수세기 세월의 더께가 쌓인 그들의 집이 있다. 입구에 ‘입장 금지’가 붙어 있긴 하지만 대문은 활짝 열려 있어 슬그머니 구경하기엔 충분한 틈이다.

집집마다 있는 문당門當과 호대戶對를 관찰하면서 걷는 것도 흥미롭다. 문틀에 새긴 돌조각 혹은 목각을 지칭하는 문당은 가문의 신분을 상징한다. 개수가 많을수록 세력이 높은 집안을 뜻한다. 문 양쪽에 세워진 돌조각, ‘호대’도 집주인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둥근 돌은 문관, 네모난 돌은 무관의 집이라는 뜻. 후퉁을 구석구석 살핀 후 중앙로로 다시 나온다. 스차하이의 스허위안이 전시물이라면 카페, 부티크 호텔, 디자인 숍, 식당 등으로 개조된 난뤄구샹의 스허위안은 머물면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유럽, 미국, 인도, 일본 등지에서 온 이들이 하나씩 사서 꾸민 ‘퓨전 스허위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전, 개발과 재건 붐으로 한때 6000여 개에 달했던 후퉁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베이징 시민들이 모두 상업화된 후퉁을 반기는 건 아니다. “그래도 사라지는 것보단 낫잖아요. 마천루에 공간을 빼앗기는것보단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난뤄구샹에서 우연히 말을 섞은 베이징 대학교 학생이 이 말을 남기고 유유히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난뤄구샹의 가볼 만한 상점

이둬이궈

중국 스타일의 빈티지 엽서와 노트를 구매할 수 있는 이둬이궈一朶一果. 베이징 곳곳의 유적들, 오래된 풍경, 위트 넘치는 마오쩌둥 일러스트가 그려진 디자인 엽서와 공책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5장에 10위안으로 가격도 저렴해 선물용으로 구매하기 좋다. 우체국의 역할도 한다. 구매한 엽서에 편지를 쓴 후 우표 값을 치르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주소지로 보내준다. 5년 혹은 10년 후 발송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국제우편도 가능하다. 베이징 곳곳에 체인점이 있다.

  • LOCATION 41 Nanluogu Xiang, Dongcheng District



스리 트리 카페

난뤄구샹 상점가가 형성되던 초기, 2007년에 문을 연 스리 트리 카페Three Tree Cafe는 내부 구조를 거의 손대지 않고 보존해 전형적인 스허위안의 안쪽을 경험할 수 있다. 1960년에 한 차례 개조된 스허위안은 원래 두 가족이 함께 살던 가정집이었다. 지금은 7개의 상점이 공간을 나누어 쓰고 있다. 난뤄구샹 거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 다락방 같은 2층, 고목이 그늘을 드리운 마당 등 매력적인 자리가 많다. 집은 낡았지만 가구와 패브릭은 현대적이다.커피, 중국 전통차를 비롯해 샌드위치, 피자 등의 간단한 요깃거리를 메뉴로 갖췄다. 관광지의 중심에 위치한 만큼 가격은 조금 비싸다.

  • LOCATION 41 Nanluogu Xiang, Dongcheng District



패스 바이 바

패스 바이 바Pass by Bar는 조용한 후퉁이었던 난뤄구샹의 격변을 모두 지켜본 터줏대감이다. 이 거리에 최초로 들어선 상점이자, 베이징 최초의 백패커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주인이 자신의 여행 경험을 살려 백패커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꼼꼼히 갖췄다. 벽 한쪽을 가득 메운 여행서와 베이징에서 직접 빚은 8종의 크래프트 맥주, 180여 종의 세계 맥주들이 여행자의 갈증을 풀어준다.오전 9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밥, 술, 차 모두를 해결할 수 있다. 청나라 말기 무관의 마구간을 개조한 공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LOCATION 41 Nanluogu Xiang, Dongcheng District



플래스터드 8

플래스터드 8Plastered 8에서는 베이징과 연관된 다양한 이미지, 지하철 티켓이나 거리의 간판, 마오쩌둥의 얼굴, 곡예사 등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티셔츠와 면 가방, 열쇠고리, 휴대전화 케이스 등의 소품을 살 수 있다. 1993년 베이징으로 배낭여행을 왔다가 이 도시에 매료된 영국 출신 디자이너 도미닉이 2006년에 문을 열었다.중국의 이미지를 색다르게 해석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보그>, <엘르> 등의 패션 매거진에 소개되기도 했다.염료와 면은 모두 친환경 제품을 사용한다. 난뤄구샹의 터줏대감 격인 동네 주민들을 직원으로 고용해 소규모 가족 경영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 LOCATION 41 Nanluogu Xiang, Dongcheng District



품질 높은 문방사우 전문 상점도 있다.


마오쩌둥은 여전히 스타다.


유럽인들에게서 수집하는 빈티지 가구와 소품들.


골동품 상인 왕이문 씨가 ‘한나라의 유물’이라 주장하는 도자기. 진짜일까?



판자위엔, 과거를 소유하는 방법

왕이문(골동품 상인)

어떤 물건을 파는가?
주로 명, 청 시대의 도자기나 고가구를 취급한다. 베이징에서 20년 동안 골동품을 팔았고 판자위엔에서는 15년째다. 지금 판매하는 물건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무엇인가? 한나라가 전쟁 때 사용했던 도자기다. 적의 침입 여부와 적군의 규모를 알려주는 데 쓰였다. 입구만 밖으로 내놓고 땅에 묻으면 말발굽 소리가 공명해서 적의 규모를 추측할 수 있다. 가격은 2천위안이다.

어떻게 수집하나?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동네를 찾아다니며 땅에 묻혀 있거나 집 안에 숨어 있는 골동품을 발굴해낸다.판자위엔에서 ‘진짜’ 골동품을 가려내는 특별한 노하우를 알려달라. 그런 것은 없다.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과 전문적인 감정 지식이 있어야 한다.
요령이나 요행은 통하지 않는다.



한건경(빈티지 군용품 수집가)

어느 시기의 아이템을 주로 취급하는가?
1928년 전후, 청일전쟁 당시 홍군 부대가 사용했던 군용품부터 1980년대 군용품까지 다양하다. 양이 꽤 방대한데 수집의 범위가 궁금하다. 군용품은 모두 수집 대상이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영국군, 일본군의 군모를 다 모으는 식이다.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접근한다. 한때 전쟁 영화의 미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어떻게 수집하나?
주로 중국 내의 군용품 전문 컬렉터와 정보, 물건을 교환한다. 군부대에서 군수품을 교체하며 이전 물건을 창고에 넣어두면 그것을 인수하기도 한다. 적군이었던 나라의 수집가들과도 거래한다. 아무나 살 수 있나? 일반인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 영화사, 박물관 등의 클라이언트와 주로 거래한다. 그러나 가게에 와서 구경하는 것은 환영이다. 판자위엔에는 우리 가게처럼 단순히 물건을 파는 상점 이상의 가치를 지닌 박물관 같은 곳이 많다.

베이징엔 십수 세기의 시간 사이를 널뛸 수 있는 곳이 있다. 판자위엔지우훠스창, 판자 위엔 골동품 시장이다. 당나라의 토기부터 저명한 현대 미술가의 모작까지 갖가지 골동품을 만날 수 있다. 1990년대 초, 베이징 사람들이 자기 집에 있는 오래된 물건을 하나씩 내다 팔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지금은 5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부지에 3000여 개의 상점이 들어선 중국 최대의 골동품 시장으로 우뚝 섰다. 물건을 파는 사람만 1만여 명, 휴일 유동 인구가 7만여 명에 달한다.

본래 베이징 골동품 시장의 원조는 류리창琉璃廠이다. 1킬로미터 길이의 상점가엔 문방사우를 비롯해 고미술품, 피잉시 (중국 전통 그림자극에 사용되는 인형), 도자기 등 고가의 골동품과 예술품을 파는 곳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원나라때는 도자기를 굽는 거리, 명나라 때는 자금성의 건축재로 사용할 유리를 굽는 거리였다가 현대에 와서 베이징 제1의 골동품 거리가 됐다. 진품 보증이 비교적 확실하고 국외 반출이 허용되는 상품을 다루는 만큼 전문 수집가들이 즐겨 찾는다.
판자위엔은 류리창과 성격이 다르다. 질보다는 양이 강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곳에서 거래되는 골동품의 90퍼센트 이상은 진품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역사가 100년 미만인 골동품이나 헌책, 포스터, 중국 전통 패브릭, 문방사우 등이나 기념품을 살 목적이라면 들를 만하다. 우리가 ‘골동품’의 범주에 넣을 생각이 없었던(돈 주고 살 생각이 안 드는) 방대한 범위의 이상한(?) 옛날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흥정하기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상인이 400위안을 부른 망원경 가격에 100위안으로 응수해도 거래가 성사되는 스펙터클한 시장이다.

시장은 총 4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1구역에는 수정, 진주, 옥과 같은 보석과 책, 그림, 2구역에는 범위를 막론한 잡다한 물건들, 3구역에는 조각품과 불교 관련 용품, 4구역에는 도자기류, 청동, 수석을 파는 상점이 몰려 있다. 그 둘레를 둘러싼 2층 높이의 건물 4곳에선 값과 가치가 좀 더 높은 고가구, 서예 작품, 고미술품, 골동품을 취급한다. 건물과 구역 사이엔 노천 좌판이 즐비하다. 이 노천 좌판 탐험이 판자위엔의 백미다. 초짜가 봐도 방품(모조품)이 분명한데 상인이 ‘원나라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도자기, 왜 파는지 이해하기 힘든 깨진 도자기 조각, 개화경으로 알려진 명대의 빈티지 안경, 각양각색의 마오쩌둥 포스터와 어록 등 진기한 볼거리가 많다.

판자위엔에서 진품과 방품 여부를 가리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쇼핑은 무의미하다. 중국은 방품에도 오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도 정확하게 감정하기 어렵다. 원대에 만들어진 송대의 도자기, 명대에 만들어진 원대의 고가구는 역사가 수백 년이라 하더라도 진품은 아니다. ‘어리바리한 상인에게 싸게 샀는데 알고 보니 당나라의 토기’ 같은 행운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모조품이어도 각기 다른 시대와 당대의 스타일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가짜 골동품을 둘러보는 일도 중국 역사와 문화의 맥락을 가볍게 되짚어보는 여정이 될 수 있다. 흥미를 끄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의 용도를 물어 보는 것, 마오쩌둥의 어록이 무슨 내용인지 관심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판자위엔을 제대로 즐기는 매력적인 시간 여행법이다.



촨디샤춘, 영원한 고촌

손대지 않은 덴 없을까? 스차하이와 난뤄구샹도 나름의 매력은 있었지만 성형하지 않은 고촌, 후퉁이 보고 싶었다. 이대로 베이징을 떠나긴 아쉬웠다. 집념의 검색으로 원형이 보존된 고촌을 찾아냈다. 다음 날, 일정 변경을 불사하고 그곳을 찾아 나섰다. 베이징에서 90킬로미터, 109번 국도를 따라 자동차로 2시간가량 달리면 명, 청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 촨디샤춘에 닿는다. 500여 년 전 화북 지역의 산시 성에서 이주한 한씨 3형제가 세운 집성촌이다.

청대의 스허위안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촌락으로 유명하다. 2003년 ‘중국역사문화명촌’, 2006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후 ‘올림픽맞이’ 개발의 피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덕분에 촨디샤춘엔 새로 페인트를 칠한 담벽, 기왓장을 갈아 끼운 말끔한 지붕 같은 것이 거의 없다.한씨의 후손도 여전히 살고 있다. 30여 가구가 상주하고 20여 가구는 성수기에만 머문다. 76채의 스허위안은 개인 가옥과 게스트 하우스를 겸한다. 관광업이 수입원이 되기 전에 한씨 일가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주요 작물은 옥수수, 콩, 조와 같은 잡곡. 인근 타이항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호두도 쵠디샤춘의 특산품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근근이 생활을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늘 가난했던 건 아니다. 청나라 건륭제 시절엔 호황을 누렸다.

타이항 산맥과 칭수이허 협곡 북쪽의 완만한 비탈에 위치한 쵠디샤춘은 북쪽 지역 상인들이 베이징으로 가는 길에 거치는 중간 길목. 자연스럽게 상인들을 위한 주막과 여관을 형성했고, 촨디샤춘엔 생기와 돈이 돌았다.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비수기에 춘절까지 앞둔 터라 한산했다. 마을 정보와 소식을 귀동냥할 겸 어귀의 백반집에 먼저 들렀다. 주인 아주머니가 뚝딱 만들어준 고기국수, 옥수수지지미, 산나물부각, 생선찜 같은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길을 나섰다. 산책 코스는 비교적 단순하다. 면적 5제곱킬로미터의 작은 촌락이라 민가를 천천히 배 회해도 1~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이정표와 영어로 된 안내판도 곳곳에서 여행자의 편의를 돕는다.사실 촨디샤춘에서 단박에 탄복을 부르는 볼거리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돌과 나무를 섞어 지은 서민 스허위안은 스차하이에서 본 고관대작의 으리으리한 스허위안보다 기교나 멋이 덜하다. 그런데 그 질박한 풍경이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500년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문, 버짐 핀 외벽, 늦은 점심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노부부의 다정한 한때. 베이징에서 보고 싶었던 장면이 촨디샤춘에 있었다.

주변 산에서 구한 돌을 쌓아 만든 담장, 그 담장이 만든 서민 동네의 후통.


‘촨’은 ‘부뚜막 찬?’이라는 글자다. ‘흥할 흥興’, ‘수풀 림林’, ‘큰 대大’, ‘불 화火’자가 조합된 한자다. 주민들의 성인 ‘한’이 차갑다는 뜻의 한寒과 발음이 같아서 마을에 찬 기운이 스며들지 않도록 ‘촨’이라는 글자다. ‘흥할 흥興’, ‘수풀 림林’, ‘큰 대大’, ‘불 화火’자가 조합된 한자다. 주민들의 성인 ‘한’이 차갑다는 뜻의 한寒과 발음이 같아서 마을에 찬 기운이 스며들지 않도록 ‘촨’이라는 글자를 사용했다.


구안디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 정자에 서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촨디샤춘의 스허위안은 대부분 게스트 하우스를 겸하는 개인 가옥이지만 걸음을 멈추고 구경할 만한 곳도 몇 있다. 1403년 명나라 초기 영각제 시절에 지어진 주홍 저택, 도교식 장례 터 우다오 사원, 공동 빨래터와 우물 등에서 당시 베이징 촌사람들의 일상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담장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민가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구안디 사원이 거기에 있었다. 도교 신자들이 전쟁의 신으로 추앙하는 관우를 모시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향 냄새가 진동했다. 500년간 꺼진 적이 없었을 그 불. 관우의 앞엔 오늘 아침 누군가가 갖다 놓은 요구르트, 고량주, 과일 같은 것이 부려져 있었다. 대문을 나서자 정면으로 정자가 하나 보였다.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뷰 포인트다. 헐벗은 나무가 듬성듬성한 민둥산, 부채꼴로 올망졸망 도열한 작은 스허위안들, 죽은 잡초가 듬성듬성 삐져나온 오래된 지붕들이 한눈에 담긴다. 스산해야 마땅할 풍경이지만 어쩐지 따뜻하다. 정자에 앉아 한참 동안 볕을 쬐고 어귀로 다시 내려왔다. 아주머니에게 작별을 고할 겸 식당 안을 기웃거렸더니 차 한잔 하고 가라고 권한다. 탁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실은 궁금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촨디샤춘이 베이징 개발의 광기에서 비켜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가난해서. 해방 후 촨디샤춘은 베이징의 빈촌 중 하나였어요. 뭔가를 바꾸거나 개보수 할 돈이 없었던 거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진 않았을까?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가난하든 풍족하든, 이 마을이 좋아요. 공기 좋고, 물 맑고, 사람 따뜻하고. 52년 동안 이 마을에서 쭉 살았는데, 사정이 허락 한다면 죽을 때까지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촨디샤춘이 지켜진 건 가난 때문이 아니다. 한씨 아줌마와 같은 마음을 품고있는 이 마을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고촌의 비결이다.



<2014년 3월>
에디터 류진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하나투어 http://www.hana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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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16.06.16 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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