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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팁

[정보&팁] 리스본, 언덕 위의 낭만
2017.01.17 14:51 조회수 5,190 신고

순백의 햇살이 빛바랜 아줄레주 장식의 건물들 사이에서 춤을 추고,

언덕의 좁은 골목길에는 빈티지 트램이 낭만을 싣고 달린다.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마술적 매력이 가득한 리스본과 사랑에 빠지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TRAVELLER’S LIST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벨렝, 바이샤 & 호시우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언덕이며, 언덕 위로 빈티지 트램이 지나다닌다. 대항해 시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벨렝, 중심인 바이샤 & 호시우, 동쪽 언덕 마을인 알파마 & 그라사, 개성 넘치는 바이루 & 알투 지역을 돌면 대체로 둘러봤다고 할 수 있다. 

GETTING THERE 리스본까지 가는 직항
노선은 없다. 프랑크푸르트, 이스탄불, 파리, 암스테르담 등 유럽 주요 도시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

SEASON 지중해성 기후로 사계절이 뚜렷하고, 연평균 기온도 13~38도로 온화하다. 하지만 여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비가 자주 온다. 4~5월. 9~10월이 가장 여행하기 좋은 시기.

CURRENCY 유로를 사용한다. 서유럽에서도 물가가 저렴한 편. 에스프레소 한 잔이 1유로, 맥주 한 잔은 1~3유로. 가벼운 식사는 10유로 이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호스텔이 발달했고, 100유로 이내에서 웬만한 호텔에 머물 수 있다.

언덕이 많아서 아름다운 전망대도 많은 리스본. 전망대는 몇 번씩 가도 좋다. 눈부신 햇살이 빛나는 아침, 도시와 첫 만남을 하는 장소로도 좋고, 해질녘, 작별 인사를 나누기에도 좋다.

해질녘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 4월 25일 다리와 예수상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1755년 대지진에도 파괴되지 않은 리스본 대성당


리스본의 언덕을 오르내리는 28번 트램.


리스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햇살에 빛나는 아줄레주


리스본의 모든 길은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통한다.

어떤 우연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 5년 전 아내와 이혼하고 독신으로 사는 교사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날 다리 위에서 투신하려는 한 포르투갈 여인을 만나고, 그녀의 흔적을 쫓아 책방에 들렀다가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포르투갈 책을 만난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듯 충동적으로 리스본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싣는다. 한 권의 책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온 ‘리스본Lisbon’은 어릴 적 친구들과 했던 낱말 잇기 게임에서 ‘리’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는 데 급급했던 때 보물처럼 숨겨놨던 단어에 불과했었다. ‘리본’처럼 나와는 상관없는,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는 곳. 그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리스본행 야간열차> 책과 동명의 영화에서 본 한 장면 때문이다. 그레고리우스 역의 제레미 아이언스가 거닐던 골목(빛바랜 아줄레주 장식의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언덕 아래로 노란 트램이 달리던 풍경. 아름답다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 과거인지 현실인지, 남미인지 유럽인지 시공간을 짐작할 수 없는 비현실인 광경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책 속의 한마디,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는 그레고리우스뿐 아니라 나에게 망설임 없이 리스본행 비행기 표를 끊게 했다.


언덕과 트램이 있는 낭만의 도시
리스본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지만 공항과 도심이 가까워 리스본에 다다르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택시를 타도 20유로 내에서 시내의 웬만한 동네에 다다를 수 있다. 밤 10시, 팁까지 포함해 10유로를 주고 바이샤Baixa에 위치한 작은 호텔에 내렸다. 다음날 호텔 창가에서 마주한 리스본의 아침은 눈부셨다. 색색의 아줄레주로 장식된 건물 사이로 비치는 순백의 햇살, 나부끼는 빨래, 언덕 위에 옹기종기 서 있는 빨간 지붕 집. 유럽 여느 도시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계속되는 언덕과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는 아줄레주 때문이다.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포르투갈 특유의 장식, 비슷한 듯 다른 무늬가 새겨진 타일, 아줄레주는 포르투갈의 상징 같은 것이다. 푸른색과 흰색이 주를 이루지만 간혹 초록색, 갈색도 눈에 띈다.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게 대부분이지만, 회화처럼 역사적 순간이나 자연 풍경을 담은 것도 있다. 오래된 아줄레주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색감은 신비롭고 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포르투갈을 여행했던 후배가 “선배는 포르투갈 가면 아마 돌아오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던 이유를 알 듯했다. 나 같은 무늬 중독자는 하루 종일 아줄레주만 봐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리스본에서 아줄레주만큼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빈티지 트램이다. 노란색 28번 트램이 내가 살던 해방촌의 3번 마을버스처럼 언덕을 오르내린다. 처음 리스본에 왔다면 우선 28번 트램을 타고 시내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좋다. 마르팅 모니스Martim Moniz 정류장에서 타면 그라사 전망대,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상 조르즈 성, 리스본 대성당, 시아두 등 주요 관광지를 지나간다.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 사이로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보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스릴까지 느낄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트램을 타봤지만 리스본은 골목의 폭이 좁아 더 아슬아슬하다. 집의 벽과 닿을 듯한데, 용케 좁은 골목을 차와 사람과 트램이 함께 나눠 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캄푸 드 오리크Campo de Ourique 역까지 한 바퀴 돌고, 여유가 없다면 마음에 드는 곳에 내려서 구경한 후 다시 트램에 올라타면 된다. 단, 오전에는 트램 줄이 너무 기니 오후 2시 이후에 탈 것을 권한다.

언덕이 많아서 아름다운 전망대도 많은 도시. 그래서 리스본과의 첫 만남은 전망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높은 곳에서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면 이 도시의 아우트라인이 파악된다. 구불구불한 언덕을 올라와 처음 내린 곳은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다. 오렌지빛 지붕의 집들 뒤로 우아한 상 빈센트 드 포라 수도원과 국립 판테온, 그리고 저 멀리 시원하게 펼쳐진 테주 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드문드문 보이는 야자수까지, 이국적인 낭만이 넘실댄다. 더 여유롭게 리스본의 전망을 감상하려면 전망대 옆 노천 테라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를 지나면 상 조르즈 성까지 이어진다. 상 조르즈 성은 알파마와 리스본 전체를 한눈에 굽어 보기 좋은 곳이다. 고대 로마 시대인 5세기경 로마인들이 구축했고, 9세기에는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이 성을 축성했다. 이후 국토 회복에 성공한 역대 포르투갈 왕들도 알파마 지구를 비롯하여 항구와 테주 강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이 성의 군사적 이점을 살려 계속해서 요새로 이용했다고 한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파괴된 성은 1938년에 복구됐다. 성곽 내부는 옛날에 궁전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지금은 나무가 울창한 공원이 되었다. 성 자체를 보기보다 성곽을 걸으며 전망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동네를 천천히 거닌다. ‘알파마 & 그라사Alfama & Graça’로 불리는 동네는 가장 리스본다운, 언덕의 절정을 맛볼 수 있는 동네다. 언덕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알록달록한 집들, 길가에 빈틈없이 주차된 자동차들, 좁은 길을 쉴 새 없이 달리는 노란 트램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언덕을 오르다 지칠 때 즈음이면 전망대에서 잠시 쉬어가면 된다. 리스본에는 다양한 전망대가 있는데 비슷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바라보는 풍경이 제각기 다르다. 그라사 전망대는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전망대다. 커다란 소나무 그늘 아래 노천카페에는 맥주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해 질 녘에는 황혼으로 물든 아름다운 리스본 시내의 전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전망대를 둘러보고 언덕길을 내려오면 리스본 대성당과 만난다. 리스본의 랜드마크로 성당 앞에는 성당과 성당 앞을 지나는 노란 트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다. 리스본 대성당은 12세기 그리스도교가 이슬람교도로부터 리스본을 탈환한 뒤 건축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워낙 견고하게 지어 리스본을 폐허로 만들었던 1755년 대지진에도 파괴되지 않았다. 내부와 외부 모두 로마네스크 양식이 주를 이루지만 전체적으로는 디니스 왕이 건조한 고딕 양식의 회랑과 대지진 후에 다시 지은 바로크 양식의 제단 등 여러 양식이 섞여 있다. 화려해 보이면서도 특유의 빛 바랜 듯한 색감과 질감 때문에 투박하고 견고한 느낌이다. 포르투갈의 성당은 아무리 관광객이 많더라도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다른 유럽 대도시의 유명 성당과 달리 고요하다. 어느 성당에 가도 기도하는 현지인들이 많아 가톨릭 국가의 위엄이 느껴진다. 성당 왼쪽, 크루지스 다 세 Cruzes da Sé 거리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카페나 바들이 몰려 있다. 포이스 카페 Pois Café는 리스본 힙스터들이 사랑하는 카페로, 높은 아치형 천장 아래 빈티지한 가구와 책들로 꾸민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하면서 편안하다. 책을 읽거나 커피 한잔 마시러 온 리스본의 젊은이들과 어우러져 있으니, 잠시 내가 관광객이란 사실을 잊고 편안해진다.

리스본의 모든 길은 코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으로 통한다. 친구와 헤어졌을 때 다시 만나는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떨어져 구글 맵을 볼 수 없어 잠시 방향 감각을 잃었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언덕에서 아래쪽으로, 강바람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걷다 보면 반드시 코메르시우 광장과 만나니까. 코메르시우 광장은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제국이었단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대항해 시대의 흔적은 벨렝 탑이나 전승 기념관 등이 있는 벨렝에 더 많이 남아 있지만 테주 강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관문인 코메르시우 광장은 그 스케일에서부터 대항해 시대의 패기가 느껴진다. 광장 중앙에는 1755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폼발 후작과 재정비한 호세 1세 왕의 기마상이 서 있고, 그 옆으로 3층 높이의 노란 회랑이 광장을 감싼다. 광장에서는 가끔 팝업 스토어나 마켓이 열리기도 한다. 리스보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마르치뉴 다 아르카다Martinho da Arcada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만끽한다. 강가로 나가 앉아 바다처럼 넓은 테주 강가의 노을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눈부시고 거대한 하얀 대리석 아치인 ‘승리의 아치’를 관통하면 리스보아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아우구스타 거리Rua Augusta가 나온다. 호시우 광장까지 쭉 뻗은 대로의 양옆으로 폴 & 베어, 자라, 망고 등 유명 브랜드 숍이 늘어서 있다. 보행자 전용 도로로 거리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나 공연이 펼쳐져, 쇼핑하며 구경하기에 좋다. 대로변에는 노천카페나 레스토랑이 많은데, 관광지인 만큼 가격은 싸지 않다. 한 블록만 옆으로 가도 질 좋은 해산물을 파는 레스토랑이 많으니, 배가 고프더라도 조금만 발품을 팔자.



그라사로 향하는 골목, 파스텔 톤 건물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그래피티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포르투갈 특유의 장식, 아줄레주.


대항해 시대의 유산, 벨렝 탑. 마누엘 양식을 응축해서 보여준다.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에서 귀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렝, 대항해 시대의 숨결을 느끼다
사실 리스본에 가기로 결정하기까지, 포르투갈에 대해서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은 별로 없었다.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조차 나에겐 별로 중요한 사건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유럽의 한 귀퉁이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포르투갈은 15~16세기 대항해 시대에 새로운 항로 개척의 선두 주자였고, 벌어들인 수많은 부로 황금 시대를 펼치기도 했다. 엔리케 왕자,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바스쿠 다 가마, 마젤란 등 학창 시절세계사 책에서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탐험가들이 모두 포르투갈 출신이다. 리스본 서쪽 벨렝은 대항해 시대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이틀 이상 리스본에 머문다면, 반나절 이상은 일정에 넣는 것이 좋다. 호시우 광장에서 15번 트램을 타고 가도 좋고, 테주 강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1시간 정도 타고 가면 테주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에 위치한 벨렝 탑Torre de Belém을 바닷가 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넓은 평원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표표히 서 있는 벨렝 탑은 마누엘 1세 통치기에 행해진 포르투갈의 대표적 건축 양식인 마누엘 양식을 응축해서 보여준다. 마누엘 양식은 어패류나 해초, 밧줄, 닻 등 대항해 시대의 상징물을 모티브로 하는 후기 고딕 양식의 일종으로, 동글동글하면서도 정교하고 섬세해서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요새 용도로 지어진 벨렝 탑은 훗날 여러 용도로 사용됐다. 모든 탐험대의 전진기지이기도 했고 밀물과 썰물 때의 수위 차로 물에 잠기곤 했던 1층은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벨렝에서 또 하나 꼭 봐야 할 곳은 바로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이다.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에서 귀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건물 입구에만 서도 화려한 마누엘 양식에 감탄하게 된다. 안에 들어가면 감동은 더 커진다. 세심한 디테일의 파사드와 화려한 건축 양식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탐험가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를 올리던 곳이었던 만큼, 건물 구석구석에서 밧줄, 해초, 조개 등 대항해 시대를 상징하는 장식들을 발견할 수 있다. 회랑에서 바라보는 정원도 아름답다.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수도원 옆의 산타 마리아 성당으로 발길이 이어진다. 둥근 기둥과 야자수 모양의 둥근 천장 등 마누엘 양식에 충실한 성당은 건축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힌다. 바스쿠 다 가마, 포르투갈의 대문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의 석관이 이곳에 있다.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항해를 떠난 바로 그 자리에 그가 탔던 범선인 카라벨을 본뜬 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 ‘발견 기념비’ 또한 벨렝의 랜드마크 중 하나. 항해왕 엔리케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발견 기념비는 마침 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벨렝에 왔다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바로 전설의 나타를 먹을 수 있는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ém이다. 1837년, 수녀님의 비밀 레시피를 이어받으며 시작됐다. 늘 문밖에는 나타를 사려는 관광객들로 문전성시인데, 안에 들어가면 자리가 꽤 넓으니, 들어가서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어도 좋다. 달지 않고 겉은 바삭, 안은 부드러워 입에서 살살 녹는다. 대항해 시대의 흔적이 아니어도 벨렝은 복잡한 도심과는 또 다른 대서양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눈에 걸리는 것 없이, 펼쳐진 바다만 봐도 가슴이 확 트이고, 넓은 공원 잔디에 누워 낮잠을 자기에도 좋다. 현대미술에 관심 있다면 베라두 컬렉센 미술관도 들러보자. 규모도, 전시 내용도 생각보다 훌륭한데 입장료도 공짜라 더욱 만족스럽다


바이루 & 알투에서 로컬처럼 먹고 즐기기
리스본에 머문 지 3일째 되는 날, 호텔을 옮겼다. 도착 날 방이 없어서 예약하지 못했던 포이츠 호스텔Poets Hostel에 방이 났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낯선 땅에 홀리다>라는 에세이 책에서 추천했던 곳. 혼성 도미토리에서 낯선 여자와 방을 같이 쓰기를 고대했다가 실패(?)한 에피소드를 읽고 ‘그래도 혹시 나는 파란 눈을 한 금발 남자와 혼숙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멋진 남자는 커녕 남자와 방을 같이 쓰는 것조차 실패했다. 페루난두 페소아를 비롯해 당대 포르투갈 문학가들의 단골 카페로 유명한 아 브라질 레이라A Brasileira가 있는 건물에 위치한 포이츠 호스텔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문학적인 콘셉트로 만들어진 호스텔이다. 헤르베르투, 보르헤스 등 시인들의 이름을 내건 방 한쪽 벽면은 책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런 곳에 묵으니 머무는 동안이라도 시를 읽어야 할 거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와이파이 비번은 ‘LOGOUTANDREADBOOKS’. 당장 스마트폰을 던져버리고 책을 읽어야 하나? 넓은 주방에는 조리 도구가 있어 간단히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으며 공용 거실은 마치 작가의 거실처럼 꾸며져 안락하고 편안하다. 호스텔에서는 벼룩시장 투어나 비치 투어 등 별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카페 아 브라질 레이라에서 커피 한잔을 마신후, 오전 11시부터 벼룩시장과 알파마 그라사 골목 투어에 나섰다. “한국에서 왔나요? 한국 영화를 좋아해요. 박찬욱 감독과 나홍진 감독 팬이죠.” 가이드 후앙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복수는 나의 것>과 <황해>를 재미있게 봤다며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후앙을 따라 그래피티가 그려진 그라사의 골목을 걸었다. “벼룩시장을 좋아한다면 오늘 가는 벼룩시장에 만족할 거예요. 아주 저렴한 가격에 좋은 물건을 득템할 수있으니까요.” 상 빈센트 드 포라 수도원 근처 공터에서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열리는 페이라 다 라드라Feira da Ladra는 리스보아 최대 규모의 벼룩시장이다. 포르투갈어로 라드라는 ‘도둑’이란 뜻, 일명 ‘도둑 시장’으로, 도둑들이 훔친 장물을 팔던 시장이란데서 유래했다. 후앙의 말대로 보물 창고였다. 골동품, 그림, 책, 그릇, 레이스 천, 액세서리 등 온갖 아이템이 가득했다. 초록색 알이 박힌 반지와 빈티지 액자를 샀다.

사실 리스본 여행을 마치고 포르투까지 다녀왔다. 리스본과 달리 더 빈티지한 매력을 가득 품고 있는 포르투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지만 여행을 끝낸 지금은 “리스본이 더 좋아, 포르투가 더 좋아?” 하고 사람들이 물으면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라는 질문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다만 확실한 건 도시의 에너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리스본부터 가야 한다는 것이다. 리스본은 규모가 주는 편리함이 있다. 작은 규모의 포르투가 어디를 가도 관광객으로 붐빈다면 리스본은 선택의 폭이 훨씬 넓기에, 로컬처럼 즐기기 좋다.
포르투갈이 미식의 나라라는 것을 왜 사람들은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가. 대서양을 곁에 두고 있는 포르투갈은 해산물의 천국이다. 염장 대구를 이용한 바칼라우 요리는 리스본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포르투갈인의 솔 푸드다. 그다음 가장 흔한 것이 바로 문어 요리. 샐러드, 파스타, 올리브오일에 구운 것 등 다양한 문어 요리를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소금을 뿌려 구워 먹는 정어리 사르디나와 파에야보다 국물이 많은 해물밥 아로즈 드 마리스쿠도 빼놓을 수 없다. 물가가 파리나 런던 등 유럽의 대도시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매끼 질 좋은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포르투갈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포르투갈의 대표 음식으로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에그 타르트인 나타Nata는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덜 달고 덜 느끼해서 매끼 디저트로 먹었을 정도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당신이 먹은 에그 타르트는 가짜였어요!”
마리스쿠 대회에서 상을 탄 마리스쿠 전문점 우마 마리스케이라Uma Marisqeira를 찾아갔는데 10월까지 휴가라는 주인장의 메모를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옆 가게 사장님에게 “옆집이 10월까지 휴가가 맞냐”고 물으니, 그 사장님이 갑자기 더 맛있는 해산물 레스토랑으로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자기 식당이 아닌 다른 식당을 안내해주다니, ‘도대체 왜? 삐끼 알바도 아니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10여 분 걸어 한 음식점에 도착했다. 사장끼리 아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거래’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고마운 마음에 뭔가 줄 게 없을까 가방을 뒤적이는 사이에 나를 안내해준 사장님은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트라지시오나우 포르투게스 Tradicional Portugues에서 맛본 해물밥은 최고였다. 싱싱한 해산물에 걸쭉한 국물이 스페인에서 맛본 어떤 파에야보다도 맛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열흘 이상 지났는데 한국 음식은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다. 리스본도 여느 대도시와 같이 푸드 홀이 유행이다. 타임아웃Time Out 은 히베이라 시장에 생긴 푸드 홀. 리스본 최대의 생선, 채소 시장인 히베이라 시장의 일부를 개조해서 만든 곳으로, 점심시간에는 젊은 직장인들로 붐볐다. 해산물 요리와 스테이크, 포르투 와인, 나타 등을 맛볼 수 있다.



싱싱한 해산물에 걸쭉한 국물이 일품인 해물밥, 아로즈 드 마리스쿠.


포르투갈 레스토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어리 사르디나.

화사한 파스텔 톤 건물 사이로 순백의 햇살이 춤추는 리스본의 낮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리스본의 밤은 판타지적인 매력이 가득하다. 해가 져서 어스름할 무렵에 땡땡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트램, 석양에 물든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좁은 골목의 바에서 들려오는 구슬픈 파두pado. 체리 술인 진지냐나 로컬 맥주인 슈퍼복, 사그레스를 한 병씩 들고 담배 가게만 한 선술집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환상적인 낭만이 물씬하다. 리스본은 좁은 골목마다 들어선 바를 돌아다니며 바 호핑을 즐기기에 좋다. 바이루 알투는 리스보아 밤 문화를 즐기기에 제격인 동네다. 리스본에서 가장 개성 강한 동네이자 가장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동네. 좁은 골목에는 작은 바나 파두를 들을 수 있는 클럽, 포르투 와인 숍 등이 몰려 있다. 으슥하게 생긴 골목도 막상 들어서보면 보석 같은 바가 숨어 있다. 해 질 무렵,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에 다달았다. 우연히 걷다가 가고 싶었던 곳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금문교와 비슷하다는 ‘4월 25일 다리’와 예수상 주변으로 오렌지빛 노을이 물들었다. 젊은이들은 기타를 연주하고, 아이들은 춤을 춘다. 맥주 한 캔씩 들고 전망대 잔디에 앉아 있는 리스본의 젊은이들과 마실 나온 가족들이 초가을 밤의 낭만을 즐겼다. 최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누바이 카페Noobai Café도 옆에 있으니, 늦은 밤까지 있으려면 이곳에서 칵테일 한잔을 즐겨도 좋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파두 소리가 들려온다. 리스본에 머문 며칠 동안 떠들썩한 소란스러움을 느낀 적이 없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들떠 있지 않고, 화려한 듯하지만 순박하다. 구슬프지만 울부짖지 않는 파두처럼, 포르투갈 사람들은 절제된 온기를 갖고 있었다. 뜨겁지 않고 따뜻한 무엇. 이탈리아 뒷골 목과 스페인의 공기가 떠올랐으면서도 리스본이 특별했던 건 포르투갈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이 온기 때문일 것이다.


<2016년 11월호>

에디터 여하연, 류현경, 강은주 

포토그래퍼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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